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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25. 2023

아들이 수학여행 간다는데 엄마는 한숨이 난다


"엄마, 저 수학여행 가요."

한동안 뚱하게 다니던 고2 아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좋겠다. 가정통신문 줘봐."

아들에게서 가정통신문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장소, 날짜, 아니고 금액이다. 거의 60만 원이다. 지난봄에 친구의 아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데 70만 원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뭐, 생각보다 10만 원 싸네.


금액을 확인한 뒤 일정을 살펴본다. 제주도 2박 3일, 무슨무슨 체험을 하는군. 패키지여행으로 가면 이거보다 싸던데, 수학여행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꼭 수학여행을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가야만 해? 이런저런 불만들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지만 꾹 눌러 참는다.

"너 혹시 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서 수학여행을 가기 싫다던가 그런 마음은 없는 거니?"

"아뇨. 전혀요."

"너 제주도 가봤는데."

"기억 안 나요."

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아들에게 건넸다.

"재밌게 놀고 와."

"감사합니다~"

좋을 때다.


혼자서 또 가정통신문을 들여다본다. 수학여행비 언제까지 내야 하는 거지? 10월 13일이면 아직 여유가 있네. 월급 받아서 주식 통장 대신 스쿨뱅킹 통장에 돈을 넣으면 되겠군. 다달이 월급을 받아 조금씩 주식을 산다. 우리 부부의 노후자금인데 아이들이 크면서 주식통장에 넣을 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수학여행비를 내면 이번 달에는 아예 못 넣을 것 같다. 한숨이 난다.


며칠 뒤에 아들한테 물었다.

"너희 반에 수학여행 안 가는 친구는 없어?"

"두세 명 있어요."

"왜 안 간대?"

"그냥 친한 친구가 없어서요."


진짜 친한 친구가 없어서 안 갈 수도 있지만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친구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가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의 수학여행비로 60만 원을 내는 건 부담스럽다.


제주도 말고 강원도 산골 군대 체험장 같은데로 수학여행을 가면 어떨까? 현대문물이 없는 외진 곳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고생한 저녁에 '엄마~ 보고 싶어요'하며 눈물콧물 쏟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수학여행으로 군대 체험을 가라고 하면 차라리 공부를 하겠어요, 할 것 같다.


예전에 아이를 한 명 키우는데 몇 억이 든다는 기사를 보면서 뭐 그렇게까지야, 했었는데 이제야 실감이 된다. 그나저나 중3딸은 졸업여행 안 가려나? 초3 막내는 작년에 입던 옷이 싹 다 작아졌던데...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이 없는 난 무슨 용기로 애 셋을 낳았을까?


이봐요, 나랏님들. 애 많이 낳았다고 애국자니 뭐니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현실적인 지원을 좀 해달란 말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교복이 있지만 복장은 자율이다. 이제는 엄마가 사다 주는 세일 매대의 옷을 입지 않는다. 직접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과 신발을 골라 사 입는다. 내가 사다 주는 만 원짜리 티셔츠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다르단다. 운동화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다르단다. 아이 학원비에, 의류비에, 용돈까지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갑자기 수학여행비 60만 원을 내야 한다니 부담이 됐다. 아까운 건 아니다. 사실 진짜 아까운 돈은 학원비다. 매달 갖다 바치는 느낌이 든다. 아이가 공부에 큰 뜻이 없는 걸 알지만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보내야겠기에 학원을 보낸다. 돈 써서 학원을 보냈더니 열심히 안 한다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낸다. 


학원에 보낼 돈으로 여행을 다니는 게 더 나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할 용기는 없다. 아들이 수학여행이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다. 가서 숨 좀 쉬고 오렴.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지.


"엄마, 수학여행때 친구들이랑 잠옷 맞춰 입기로 했어요. 운동화랑 옷도 좀 사주세요~"

아들의 말을 듣고 딸이 달려온다.

"엄마, 나도 운동화랑 옷 사줘."


나는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


아들은 기억 못 하는 제주도 여행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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