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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9. 2022

조금 더 걷다 보니

행복을 알아차리다.


어제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점심시간에 산책을 나가도 될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12시쯤 비가 많이 잦아든 듯하여 우산을 챙겨 들고나가 보니 생각보다 빗줄기가 굵었다.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기는 싫었다. 일단 우산을 펼쳐 들고 발걸음을 뗐다.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맞은편에 서 있던 남자가 날 미소 짓게 했다. 약간 통통한 체형의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형광핑크색 티셔츠에 핫핑크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 살짝 웃었다. 난 저렇게 재밌게 옷 입는 사람이 좋더라. 나는 못하지만. 하하

나오길 잘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내가 매일 듣는 정오의 희망곡에서 박효신이 부른 '흩어진 나날들'이 나온다. 옛날에 강수지가 불러서 좋아했던 노래인데, 지금 내가 좋아하는 박효신이 불러주니 더욱 좋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래 이제 우리는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모른 채 살아가야지~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별이란 없을 테니까~"

나오길 참 잘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을 때 행복을 느낀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작은 나뭇잎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를 못 이겨 제각각 하나씩 아래로 살짝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하는 모습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 같아 보였다. 한참을 그 앞에서 보고 서 있었다.

나오길 정말 잘했다.


비 오는 날 가만히 서서 작은 나뭇잎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가수 아이유가 부른 '잔소리'가 나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네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사랑해야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노래를 듣고 있자니 중학교 2학년 둘째 딸 생각이 났다.

아침에 방 좀 치우라고 잔소리를 퍼부어 주고 나왔었다. 점심에 이모(우리 언니)랑 회전초밥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요새 양이 줄어서 다섯 접시 밖에 못 먹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던 딸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걱정과는 달리 고층 탑을 몇 개째 쌓고 있다는 언니의 인증샷이 도착했다.


나의 잔소리에 딸의 대답은 항상 "어. 사랑해~"이다.

세상 좀 살 줄 아는 아이이다.

딸 생각에 즐거워진다.

산책 나오길 진짜 진짜 잘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웅덩이와 마주쳤다. 뛰어 넘을까? 살짝 돌아갈까?

과감하게 뛰어넘기를 선택했는데 넘어지지 않고 잘 넘어서 기분이 좋았다. 아직 쓸만해. 하하


그리고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의 삶에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음을.


알아차리다 : 알고 정신을 차려 깨닫다.


* 산책길에서 고민 해결한 이야기 읽으러 가실래?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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