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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13. 2023

6천 원짜리 상품권 받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달렸다니

오랜만에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집에서 이십여분을 걸어 불광천에 도착했다. 마침 분수쇼를 하고 있길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쉼 없이 바뀌는 조명과 물줄기의 강약,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눈앞의 무지개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10분 정도 분수쇼를 보고 다시 걸었다. 걷다 보니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는 달리 다리는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길을 수없이 달렸던 기억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정말 열심히 달렸었다. 달리다 보면 마음속에 잡생각이 사라지고 기쁨, 행복, 긍정 같은 내 삶에 반짝이는 것들만 남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달리기를 멈춘 게 언제부터였지? 곰곰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난다.


그건 내가 사용하는 달리기 앱 '런데이'에서 상품권을 주지 않으면서부터였다. 런데이에서 매달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3천 원을 내고 참가신청을 했다. 완주를 하면 6천 원짜리 편의점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 따져볼 것도 없이 남는 장사였다.


런데이 앱을 켜놓고 대회 기간에 신청한 거리만큼을 한 번에 달리면 완주로 인정된다. 보통 월말에 대회가 있었고 다음 달 초에 모바일 상품권이 들어왔다. 다음번 달리기를 완주한 후 그 상품권으로 캔맥주를 사 마셨다. 열심히 달린 나한테 주는 선물이었다. 나는 6천 원짜리 편의점 상품권이 무슨 메달이라도 되는 양 열심히 달렸다.


몇 달 전에 런데이 마라톤대회에 변화가 생겼다. 참가비 3천 원이 없어지고, 완주를 하면 주던 6천 원짜리 편의점 상품권도 주지 않는다. 단, 2만 원대의 기념품을 사는 참가자가 완주를 하면 상품권을 준다. 기념품은 러닝시 필요한 액세서리나 티셔츠였는데 굳이 살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참가신청만 해놓고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 참가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달리기와 점점 멀어졌다.


내가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건 작년 8월이었다.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 '달리기'를 들으면서 문득 '마라톤대회에 한번 나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대회가 많았다. 9월에 한강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5km 참가신청을 하고 저녁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연습했다. 처음에는 1km도 못 달렸는데 꾸준히 연습해서 5km를 달릴 수 있게 됐다. 10월에는 10km 대회에 참가했다. 달리기가 즐거웠다.


올해는 하프코스 이상을 달리고 싶었다. 2월에 한번 도전했는데 절반은 달리고 절반은 걸어서 겨우겨우 끝마쳤다. 하프코스를 제대로 완주할 때까지 연습하겠다고 결심해 놓고 어느 순간 주저앉아 버렸다. 그 어느 순간이 완주를 해도 상품권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때부터라는 걸 깨달으니 웃음이 났다.


어느새 9월, 한 시간을 쉼 없이 달리던 다리가 이제는 한 시간 걷기도 힘든 다리가 됐다. 이대로 포기? 포기하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9월 런데이 마라톤대회 참가신청을 했다. 기념품이 모자와 팔토시, 마침 필요한 아이템이라 구매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5km를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려니 처음만큼 힘들었다. 편의점 상품권 혹은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생각을 생각하며 열심히 달렸다.



10월에는 10km를 신청했다. 완주를 하고 지난달에 받은 상품권으로 맥주를 사 먹어야지. 그동안 내가 달리기를 열심히 한건 달릴 때 느끼는 커다란 행복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편의점 상품권 받아서 맥주 사 먹는 맛' 그 소소한 즐거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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