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모두 몇 개의 궁궐이 있을까요?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그리고 여기 덕수궁.
모두 다섯 개입니다.
덕수궁에서 만났던 역사 해설사님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서울의 궁은 모두 다섯 개라는 거.
며칠 전 티켓사이트에서 <덕수궁 야경투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궁을 야간에도 개방하는 줄 몰랐었다. 1인당 1만 원 정도의 금액을 결제하면 역사 해설사와 함께 덕수궁을 돌면서 덕수궁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멋진 야경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계획한 서울 여행의 첫걸음으로 궁궐 야행, 꽤 괜찮은 걸. 남편, 초3 막내딸과 함께 갈 생각으로 3장을 예매했다.
"자기야, 우리 이번 주말에 덕수궁 돌담길 한번 걸어볼까?"
"덕수궁 돌담길 걸으면 헤어진다던데?"
"우린 결혼했으니까 괜찮아. 가기 싫어?"
"가기 싫은 게 아니고 요새 계속 야근을 해서 피곤한데."
"그럼 생각해 보고 하루 전까지 말해 줘."
남편이 어떻게든 따라가지 않을 핑계를 찾는 것 같아 서둘러 근처 맛집을 검색했다. 덕수궁 근처 맛집으로 검색해서 <어반 가든>이라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남편에게 식당 링크를 보냈다.
"나 여기 가서 밥만 먹으면 안 될까?"
"밥만 먹는 건 안돼. 덕수궁도 같이 가야 돼."
10월 14일 토요일, 오전에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졌다.
"비 와서 안 되겠다. 우리 밥만 먹고 오자."
남편에게는 이 비가 반갑겠지만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조금 있다가 그칠 거야."
나는 만약에 비가 계속 내린다면 비옷이라도 챙겨 입고 갈 생각이었는데 오후가 되자 다행히 비가 그쳤다. 궁안은 밤에 쌀쌀하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비까지 내린 터라 때 이른 초겨울 외투를 꺼내 입었다.
3시쯤 집을 나섰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가자고 해서 주말에 복잡하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을 텐데 꼭 가져가야겠냐고 툴툴거렸다.
"그냥 버스 타고 가면 안 돼?"
"올 때 피곤해서 안돼."
그래, 피곤하다는데 버스 타고 가자고 하면 정말 가기 싫겠지, 이건 내가 양보하지 뭐.
길이 많이 밀리지 않아 20분 정도 걸려 광화문 앞에 진입했다. 남편은 저렴한 주차장을 알려주는 앱으로 종일 5천 원에 주차 가능한 빌딩을 찾았다. 덕수궁 맞은편 한화생명 건물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말대로 올 때는 너무 피곤해서 차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누군가와 함께할 때는 내 생각만을 고집하면 안 된다.
덕수궁은 시청 앞에 있다. 시청 앞 광장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있어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덕수궁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곳 역시 <정동 야행>이라는 축제를 하고 있어 사람들로 붐볐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거리공연과 체험부스, 먹거리 트럭이 늘어서 있었고 정동제일교회, 정동극장, 구세군역사박물관 등 정동에 위치한 문화공간을 방문하면 스탬프를 찍어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행사 안내지를 들고 걸으며 보이는 곳마다 들러 스탬프를 받았다.
길을 걷다 보니 내가 예약한 식당이 보였다. 5시 예약이었는데 배고프다는 딸의 성화에 4시 30분쯤 식당으로 갔다. 다행히 자리가 비어있었다. 예쁘게 꾸민 정원이 있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식당이었다. 딸이 좋아하는 까르보나라, 피자,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음식 자체가 맛있기도 했지만 많이 걸은 뒤라 더 맛있었고, 앞으로 또 많이 걸을 거라 열심히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국토발전전시관에 들어가 풍경과 액자 만들기 체험을 했다. 조금 더 걷다가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어둑어둑한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해설을 들을 팀은 모두 열명이었다.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은 없었다. 남편이 같이 와줘서 고맙기도 하고, 역사 해설이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덕수궁은 다른 궁에 비해서 매우 작다. 그 이유가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3분의 2가 불에 탔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래 궁의 3분의 1 규모라고 한다. 궁 안을 돌며 여기서는 고종이 위폐 되어 지냈고, 여기서는 어떤 왕과 대비가 지냈다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었는데... 사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덕수궁에 살았던 왕과 왕의 가족들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겠다는 느낌이 남았을 뿐이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독립운동을 위해 그 많은 재산을 내놓고 헌신한 이회영선생과 여섯 형제 이야기,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많은 약을 팔고도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 위해 늘 적자였던 활명수를 만든 기업 부채표 이야기, 일제가 우리 문화를 훼손하기 위해 궁을 뜯어다가 전시하고 마음대로 팔아먹은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말의 유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다. 처마 밑에 새가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려고 꽂아둔 꼬챙이를 회꼬지라 불렀는데 그게 요즘 쓰는 말 '해코지하다'가 되었다. 그 이후에는 처마 밑에 그물망을 쳐두어서 새들이 처마밑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그래서 나온 말이 '망쳤다'라고 한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1월, 안 그래도 추운데 나라까지 빼앗겼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그래서 날씨가 춥고 으스스할 때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을 썼고 오늘날 '을씨년스럽다'가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나는 수학 다음으로 역사를 포기했다. 역사는 숫자를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왕의 즉위 순서를 외우고 사건의 연도를 외우는 것에 질린 나는 역사가 재미없었다.
오늘 만난 해설사님은 이 일에 굉장한 사명감을 가진 분으로 보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그분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해서 들었고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을 때는 너무 감동받아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역사에 더 관심을 갖고 훼손되고 왜곡된 우리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과목이었다.
남편과 초3 딸이 두 시간 동안 지루해하지 않을까? 힘들다고 투덜거리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즐거워했다. 남편이 딸에게 말했다.
"지윤아, 엄마가 어디 가자고 하면 되게 귀찮은데 또 막상 나와보면 재밌어, 그치?"
"응 맞아."
예상대로 궁궐의 밤은 꽤 서늘했다. 해설사님의 말로는 한이 많이 서려서 그렇다고. 우리는 꼭 붙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궁궐을 돌았다.
그냥 천천히 둘러봤다면 이십 분이면 다 둘러볼 공간을 두 시간 넘게 돌았다. 끝까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애쓴 열정의 해설사님께,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박수를 보냈다. 일정이 다 끝나고 나서 사진도 찍고 천천히 한번 더 둘러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8시 40분쯤 되자(9시 종료) 지휘봉을 든 분들이 바깥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단풍이 들 때 혹은 봄에 석어당 앞 살구꽃이 필 때 한번 더 와보기로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도 모두 돌아볼 생각이다. 우선 티켓사이트를 검색해 <창경궁 야경투어> 상품을 예약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야간개장은 따로 판매하는 상품이 없었고, 8월 말경 홈페이지로 신청을 받아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하다. 당첨이 안 됐어도 한복을 입고 가면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한번 입어볼까? 결혼사진 찍을 때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참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