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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13. 2023

가을 데이트 코스로 창경궁 야경 산책 강추


궁에 들어온 여자가 궁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데, 뭘까요?
첫째는 쫓겨날 때
둘째는 죽었을 때


오늘(11월 4일 토요일) 창경궁 야경투어에서 만난 해설사의 첫 질문이었다. 서울에 있는 모든 궁의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개천이 흐른다. 이 개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있는데 중앙은 왕이 다니는 길, 우측은 문관의 길, 좌측은 무관의 길이다. 이 아래로 개천이 흐르는 것은 궁으로 들어올 때 마음을 깨끗이 씻고 들어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궁의 여자들은 자신의 부모가 죽었다 해도 이 다리를 건너지 못했으며 그 앞에서 통곡하다가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다리를 건널 수 있는 건 오직 쫓겨나거나 자신의 죽음을 맞았을 때뿐이라는 슬픈 이야기를 시작으로 창경궁 안으로 들어갔다.


옥천교와 홍화문


창경궁은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다. 조선 왕조는 경복궁을 법궁으로, 창덕궁을 보조 궁궐로 사용하는 양궐체제를 이어왔다. 그러나 역대 왕들은 경복궁 보다는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했고 왕실 가족이 늘어나면서 성종이 여러 대비들을 위해 창덕궁 옆에 지은 궁궐이 창경궁이다.



창경궁에서 가족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나면 좋으련만, 권력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인가 보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영조, 아들을 독살시키고 며느리, 손주까지 다 죽여버린 인조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도세자와 소현세자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궁궐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온다. 한 맺힌 영혼들이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지난달에 덕수궁 야경투어를 하면서 나는 전생에 왕비였을까, 무수리였을까를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 무엇도 아니었기를 바란다. 


전생에 왕비나 무수리가 아니었을 세 여인


창경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춘당지라는 연못이다. 누군가 내게 분위기 좋은 데이트 장소를 묻는다면 해 질 녘에 궁궐을 산책하고 깜깜해지면 춘당지 앞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 결혼하기 전에 왔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데이트 코스 추천, 창경궁 춘당지


창경궁은 1909년 일제에 동물원, 식물원으로 훼손되며 명칭이 창경원으로 바뀌었다. 나도 어릴 때 창경원이라고 듣고 자라서 그 명칭이 꽤 익숙하다. 1984년에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그곳에 있던 동식물은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창경궁에 지금도 남아있는 식물원의 흔적이 대온실이다. 대온실은 일제의 불손한 의도 아래 훼손된 창경궁의 일면의 보여주는 건축물이지만,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근대문화유산의 의미를 가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니 이 또한 역사의 슬픈 단면이다.



창경궁 대온실


나는 서울대공원에 갈 때마다 과천에 있는데 이름이 왜 서울대공원일까 궁금했다. 그 이유는 그 땅을 서울시에서 사들여서 창경원에 있던 동식물을 옮기고 서울시에서 관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를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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