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읽은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말하다>에 작가의 수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직업 1위가 작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 조사 결과에 대해 격하게 공감했다.
최근 거울을 보다가 흰머리가 부쩍 늘어 미용실을 갔다.
"뒤쪽에 흰머리 정말 많아요. 얼마 전까지 이렇지 않았는데."
미용실 원장님이 내 눈에 안 보이는 부분까지 확인해 주셨다.
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쪽 양옆에만 얌체처럼 나오던 흰머리였다.
내가 왜 이렇게 늙어버렸지? 이건 모두 다 글쓰기 때문이야!
내 비록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1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대개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스트레스받으며 억지로 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 마감일이 다가올 때, 압박감을 느꼈다. 누가 글을 내라고 보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작년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서둘러 작가 신청을 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엄마는 꿈이 뭐야?'라는 딸의 질문에서 시작됐고, 그 답을 찾아가는 내용의 글을 썼다. 급하게 브런치북을 만들어 응모했다.
올해는 1년이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브런치북을 만들어 응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작년보다 잘 쓴 거 같고 인기 있었던 글도 있는데 막상 책으로 만들려고 모아보니 한숨이 났다. 글들이 너무 어수선하게 느껴졌고 끝까지 읽어줄 만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아직 멀었구나! 내 글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도 마지막날에 꾸역꾸역 응모는 했다.
이번 브런치북 응모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것과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건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명확한 주제를 정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써나가야 하며,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궁금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흰머리는 그간 안 쓰던 머리를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난 것이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변비도 걸리고 배도 더 나왔다. 모니터를 오래 봐서 눈도 시리고, 가끔 손가락도 저리다. 공 들여 쓴 글에 시비 거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난다. 글이 잘 안 풀린 날에는 자다가도 글 생각을 할 때가 있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1년 넘게 글을 쓰며 했던 모든 행동이 노화의 지름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로 글 한편이 늘 때마다 흰머리와 주름과 뱃살이 늘고 브런치북 한 권이 완성될 때마다 수명이 한 달쯤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나는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글쓰기는 외모와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지만 내 삶을 아름답게 가꿔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오늘도 눈뜨자마자 두 시간째, 못생겨지고 수명 깎아먹는 노화의 지름길을 신나게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