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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14. 2023

재택근무 하는 편한 회사 찾으세요?

 

  "오랜만이네. 오늘 쉬는 날이야?"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아들의 초등학교 때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들이 초1 때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며 친하게 지냈었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아이들이 같은 반일 때만 친했다.

  "아니, 나 재택근무 중이잖아."

  "이제 다른 일 하는 거야?"

  "아니, 그 회사 그대로 다니는데 재택근무 하기로 했어."

  "와, 부럽다. 그렇게 편한 회사 있으면 나도 좀 소개해줘."

  나는 대답 없이 웃었다. 세상에 '편한 회사'라는 게 있을까? 이 회사 역시 처음부터 편한 회사는 아니었다.


  결혼하고 십 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던 나는 6년 전에 취업을 기로 마음먹었다.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찾아가 보험총무사무원이라는 직종의 교육을 신청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나이가 많아도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그 교육과정을 선택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4개월간 교육을 받고 바로 취업해 1년을 다니다가 이직한 직장이 지금 다니고 있는 곳이다.


  입사 첫날, 내게 인수인계를 해준 분은 입사한 지 3개월도 안돼 그만둔다고 했다. 이유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세 명의 여직원들과의 불화 때문이라고, 그녀들은 나이가 열 살 이상 어린데도 자신을 '○○씨'라고 부르면서 틱틱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도 이대로 그만둬야 하나 약간 고민이 됐지만, 일단은 스스로 겪으면서 판단하기로 했다.


  며칠 지나고 보니 느껴졌다. 내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나간 분이 왜 다른 직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를. 그녀는 입사 초부터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점심시간에 회의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세 명의 직원들과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데 밥까지 같이 안 먹으니 친해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열 살 이상 나이차가 나는 동료한테 '○○씨'라고 불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다른 보험사에서는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총무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기는 보험사가 아니라서 그 호칭은 어색했다. 나는 오랫동안 불리지 않던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씨'라고 불리는 것의 장점은 또 있었다. 결혼 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언니'라고 불렀다. 당연히 시간이 가면서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동료들이 많아졌고 그건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다. '언니'라고 불리면 일을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밥도 더 많이 사줘야 할 것 같았다. 나를 '○○씨'라고 부르는 이 회사에서 나는 나이 많은 막내가 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운송회사다. 내가 하는 일은 대표가 이 사업을 하기 전에 했던 보험 계약과 관련된 일이었다. 일이 별로 없어서 늘 한가했다. 차장이 다른 직원한테 운송 관련 업무 중 일부를 내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자신이 하기 귀찮은 일들을 내게 넘겼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날마다 넘어와야 할 서류들인데 꼭 독촉 전화를 해야만 하는 일이라든가 너무 오래돼서 캐비닛 깊숙한 곳을 뒤져야 찾아낼 수 있는 정리 작업 같은 것들이었다. 하기 싫었지만 회사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2년이 지났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을 반으로 줄여야 했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은 이 회사를 오래 다녔고 일을 잘했기 때문에 내가 해고되겠구나 생각했는데, 나는 남게 됐다. 그 이유는 내가 멀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보험업무는 나만 할 수 있었고, 그 외에 다른 직원이 하던 일도 일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보다 더 큰 이유, 그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해고된 두 명의 직원은 차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차장은 업무를 지시할 때 꼼꼼함을 넘어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까지 대비하게 했다. 일을 직접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좀, 아니 많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나는 차장이 업무를 지시하면 일단은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들은 그렇게는 못한다고 딱 잘라 말하거나 다 들리게 구시렁거렸다. 이 두 명의 해고를 결정한 건 차장이었다.


  전에는 청소업체가 해주던 사무실 청소도 이제는 직원들이 해야 했다. 차장은 청소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남은 직원 한 명과 나, 둘이 해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었다. 집에서도 항상 하는 청소를 회사에 나와서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또한 내가 아줌마라서 잘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뿐 아니라 점심을 시켜 먹은 뒤 나오는 설거지, 손님이 왔을 때 차 심부름 등을 기꺼이 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이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대충 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고2인 첫째는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데 중간에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했고, 중3인 둘째는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돌아다니려고 했다.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제안했다.


  감사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를 붙잡은 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보다 내가 일을 계속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불편하다 생각된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결정이다. 언제든 백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재택근무를 한 지 5개월째다.


  남들이 편하겠다고 부러워하는 재택근무에도 불편함은 존재한다. 5개월 동안 최소한 두 가지 불편함이 생겼다. 날마다 하던 출퇴근이 없어지니 운동량이 확 줄어들고 업무를 하다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동료와 한 마디 해줘야 속이 풀리는데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루하루 야금야금 뱃살과 혼잣말이 늘어간다.


혼자 점심 먹다가 고등어랑 대화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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