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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03. 2023

11월 2일 날씨 더움

아람이의 일기

여섯 시에 알람이 울렸다. 남편이 골프를 치러 멀리 간다고 일어났다. 남편이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깼지만 일어나기 싫어서 비몽사몽인 척을 했다. 남편이 나가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일어났다.


여덟 시는 돼야 일어나 허둥지둥 등교하던 둘째가 일곱 시에 나갔다. 친한 친구랑 배구를 한단다. 엊그제 딸이 다닐 영어 학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학원에서 마주친 아이들과 너무나 반갑게 웃는 딸을 보고 놀랐다.

"야, 너 공부하는 친구도 있었어?"

상담하는 곳마다 딸의 성적을 물었다. 딸은 당당하게 성적을 밝혔다.

그래, 난 너의 당당함을 사랑한다. 넌 공부를 못하는 게 아냐. 안 한 거지.


아들을 깨우고 막내딸의 아침을 만들었다. 원래는 아침을 안 먹었는데 요즘에는 아침을 꼭 먹어야겠단다. 오늘은 볶음밥을 만들었다. 기름을 두르고 파를 볶다가 당근을 볶다가 밥과 계란, 굴소스를 넣었다.

"엄마, 맛있어. 그런데 양을 조금 줄여줘."

뱃살이 나왔다고 놀리면서도 양은 항상 넘치게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날이다. 11월인데 날씨가 너무 따뜻하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 건 날씨 탓이지 나날이 늘어가는 뱃살 탓이 절대 아니다.


출근길에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천천히 읽었다. 내 글에 올라온 댓글도 읽었다. 새로운 댓글을 달거나 답글을 달 수가 없다. 요 며칠 글은 쓰는데 말은 하기 싫은 기분이다. 댓글은 글이 아니라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지만 매일 만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큰둥한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매우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집에 있는 날 미루고 미루던 일들을 출근한 날 열심히 한다.


점심시간이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동료의 질문에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래서 결국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다.


퇴근시간을 5분 남겨두고 컴퓨터를 끄려는데 전화가 왔다. 받을 돈을 받지 못했다는 화물차 기사님의 전화다. 며칠 전에 분명히 입금했다고 말했는데 입금이 안 됐다고 계속 우긴다. 결국 입금내역을 캡처해서 보냈다. 허둥지둥 나왔다. 5시 10분 전철을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한다.


시계를 보면서 뛰듯이 걷다가 '헉- 망했다!'

다음 주 출근 전까지 작업해야 할 서류가 있는데 그걸 안 챙겼다. 역까지 다 안 가고 생각난 게 어디야. 애써 화를 삭이며 뒤돌아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저 다시 왔어요~"

웃으며 들어가 서류를 챙겼다. 20분 뒤에 오는 열차를 탔는데 집에 도착한 시간은 30분이 더 걸렸다.


막내딸을 밖으로 불러 짜장면을 사 먹었다. 난 한번 먹고 싶은 건 기어이 먹고야 만다. 집 앞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황금향'이 와 있었다. 맛있어서 몇 개를 까먹고 잠시 후에 들어온 첫째의 저녁을 차려주고 또 잠시 후에 들어온 둘째의 저녁을 차렸다. 



배불리 먹여놨더니 이것들이 휴대폰만 붙들고 늘어져 있다. 막내한테 수학 학습지 한 장 풀라고 했더니 하기 싫다고 징징댄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무 생각 안 하는 데는 책 읽는 게 최고다. 책을 읽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너무나 고맙게 졸리기까지 하다. 푹 자고 싶다. 젊을 때는 그렇게 잠이 쏟아지더니 이제는 자는 것도 일이다.


남편은 언제 오려나. 골프 치고 밥 먹으면서 술 마신 다는데, 대리비가 10만 원이라고 해서 그냥 거기서 자고 오라고 했다. 자고 오면 신경질 나고 대리 불러오면 짜증 나겠지. 


11시에 전화를 했더니 오는 중이란다. 남편이 들어와 코를 골기 전에 얼른 자야지. 냉장고 속 맥주 한 캔만 딱 마시자. 11월인데 날씨가 너무 덥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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