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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22. 2023

3일 연속 반갑지 않은 등기 우편을 받았다


띵동~

낮 열두 시, 누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등기 왔습니다."

집배원이 3층까지 올라오길 기다렸다가 빼꼼히 문을 열었다.

"박승헌 님, 경찰청에서 왔네요."

경찰청? 경찰청에서 상 준다고 등기를 보냈을 리는 없고, 이 인간이 무슨 잘못을 한 거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저요? 아내... 와이프..."

"배우자시구요."

"아.. 네."

경찰청이라는 말에 놀라 '배우자'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집배원한테 받은 등기 우편을 급하게 열어보니 7만 원짜리 과태료 통지서다. 신호 또는 지시 위반, 장소는 집 근처다. 출근길이 뭐가 그리 급하다고 신호 위반을 한 거냐... 뭐,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했다.


띵동~

다음 날 낮 열두 시, 집배원이 또 초인종을 눌렀다.

"등기 왔습니다."

"박승헌 님, 경찰청에서 왔네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배우자요."

아니, 과태료 안 낼까 봐 또 보낸 거야? 그런데 열어보니 날짜와 장소가 다르다. 역시 집 근처지만 다른 방향이고, 낮시간인걸 보니 아마도 휴일에 골프연습장을 간다고 했던 날인 것 같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경찰청에서 등기 왔더라."

"뭔데?"

"세금 모자란다고 기부 좀 하래."

"기부?"

"인간아, 차라리 기부면 다행이지. 7만 원짜리 과태료 통지서 이틀 연속으로 날아왔어. 집배원 아저씨랑 친구 먹게 생겼다고!"

평소에는 자기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인간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으이그, 인간아~~

"어, 미안."

"내가 딴 건 다 내줘도 이건 못 내줘. 알아서 내세요, 배우자님!"


띵동~

다음날 열두 시쯤, 또 집배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뭐야? 과태료 통지서가 또 있는 거야?

"박재민 님, 동사무소에서 등기 왔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 온 거다.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아들과 나의 관계? '모자'라고 해야 하나? 그건 너무 어색하니 평소대로 하자.

"엄마요."

급하게 열어보니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다. 아이의 생일인 11월이 지나고 12월 이후에 발급받으러 오라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주민등록증이라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때 아들한테 통지서를 보여줬다.

"아들아, 너 주민등록증 만들랜다."

촉촉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엄마. 이거 나한테 온 건데 왜 엄마가 뜯었어요?"

아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들의 엄마고 보호자니 아이한테 온 우편물을 먼저 뜯어보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마음속 아들은 아직도 취학통지서를 받을 때의 아이였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을 만들 나이가 됐다는 건 이제 이 아이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걸 뜻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미안, 엄마가 앞으로는 네 우편물 안 뜯어볼게."


다음 날 또 띵동~

또야? 월패드를 보니 집배원이 아니다.

"누구세요?"

"좋은 말씀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

"불교예요."


3일째를 마지막으로 등기우편은 오지 않았다. 며칠 뒤 낮에 산책을 나가다 우리 집 우편함에 우편물을 꽂고 있는 집배원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친구까지는 아니라도 우리 집에 날마다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분의 얼굴 정도는 알게 됐다. 오늘은 전기 요금 고지서가 꽂혀있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의 대부분이 돈 내라는 고지서라 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생해 주시는 집배원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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