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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10. 2024

좋은 마음으로 쓴 글을 수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를 핑계로 매우 게으른 시간을 보냈다. 라면, 짜장면, 피자 등으로 식사를 때우고 사흘동안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일을 한다고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 웰컴투 삼달리, 마이 데몬, 사랑한다고 말해줘 같은 요즘 드라마와 메밀꽃 필 무렵,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예전 드라마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드라마에 빠져 지냈다.


글을 써보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며칠 그냥 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자원봉사를 다니는 노랑꿈터(가칭)에서 전화를 받았다.

"봉사자님께서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신 걸 봤습니다. 좋은 내용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보셨어요?"

그 글은 2023년에 마지막으로 쓴 글로, 한 해 동안 노랑꿈터에서 자원봉사를 한 이야기였다.


"저희가 주기적으로 검색을 해보거든요.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몇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사진이요. 이거 ○○이 맞죠? 나중에 다른 분이 아이를 알아보면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뒷모습 사진인데도요?"

그 사진은 자원봉사 중 언니와 아이가 손잡고 산책하는 뒷모습이 예뻐서 내가 찍어둔 사진이었다.

"네. 뒷모습 사진도 안됩니다. 그리고, 저희 시설명을 실명으로 기재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보육시설 정도로만 적으실 수 없을까요? 글 쓰시기 전에 미리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네, 편집부에 얘기해서 원하시는 내용을 수정할게요."


글을 오마이뉴스로 보내기 전에 노랑꿈터에 먼저 보여줄까 생각도 하긴 했다. 그런데 이 글이 기사화될지도 불확실하고, 내 글이 노랑꿈터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내가 자원봉사를 하면서 달라진 점을 적은 글이라서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마이뉴스 편집자에게 쪽지를 보내 상황을 얘기하고 글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집자도 조금은 우려했던 부분이라며 수정을 하겠다는 답이 왔다.


난 자원봉사를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우리 주변에 노랑꿈터 같은 시설이 있다는 걸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길 바라는 좋은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전화를 받고 나니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글이 잘 안 써져 손 놓고 있던 중이라 더 기운이 쪽 빠지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글을 계속 써도 되는 걸까?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한참을 한숨을 쉬고 앉아 있었다.


이대로 멈춘다면 다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쉼을 멈추고 글을 써야 할 때가 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생각을 멈추고 무조건 쓰는 거다. 새해 첫날에 엄마가 생일상 차려준 이야기를 써서 발행했다. 


"자기야, 나 오늘 기분이 안 좋았어."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이 노랑꿈터 편을 들었다.

"그건 기분 나쁠 일이 아니야. 당연한 거야. 그쪽은 아이들 보호가 최우선이고, 굳이 홍보든 뭐든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작은 문제라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야. 자기가 이해해야 돼."

"나도 알아. 안다고! 나는 그냥 속상했겠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건데..."

공감을 원하는 내게 남편은 늘 판결을 내려주는데, 그게 다 옳은 말이라서 더 얄밉다. 


다음 날, 눈 내리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내가 선의만으로 글을 쓴 게 맞는 걸까?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글이 아니었을까?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더 신중했어야 하는 건데... 글을 쓸 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타인에게도 좋은 일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해야겠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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