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동안 돌봄 교실을 가는 초3 딸이 돌봄 교실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기 싫다고 해서 지난 3주간 도시락을 싸줬다.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을 돌려가며 싸줬는데, 이젠 그것들이 지겨워진 듯하다.
이젠 뭘 싸야 하나? 아침마다 아이 도시락 싸는 게 소풍 가는 기분이라 즐겁다고 글까지 썼으니 끝까지 즐겁게 해야 하는데, 이젠 즐거움 보다 고민이 앞선다.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 잡채를 만들었다. 도시락 하나 싸고 오전 내내 늘어져 있었다. 급식비 6,000원 아낀다고 좋아했는데, 매우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며칠 전에 쓴 딸한테 도시락 싸주는 이야기가 조회수 4만이 넘으면서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 많은 분들이 내 글에 공감을 해주셔서 기쁘고 감사하다. 하지만 인기글에는 언제나 그렇듯 내 의도를 오해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매우 긴 글이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너무 본인 아이만 생각한 거 아니냐, 특별해지고 싶은 기분을 즐긴 거 아니냐'였다.
댓글을 여러 번 읽고 생각했다. 글을 쓸 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나? 그럼 아마 난 이 글을 쓰지 못했거나, 주절주절 변명이 늘어진 아무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글을 썼겠지. 만약 봄방학 때도 아이가 도시락을 싸주길 원한다면 어떻게 할래? 난... 또 싸줄 거다.
댓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지만, 여기서 또 배운 점이 있어 정리해 본다.
우선 조금 자세하게 변명을 해보자면, 내 딸은 마요네즈가 첨가된 소스를 먹지 못하는 아이인데 여름방학 때 돌봄 교실에서 그런 소스가 들어간 반찬을 많이 줘서 힘들었다고 한다. 마요네즈가 굳이 참고 먹을 만큼 좋은 식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한 거다.
처음에 내 딸의 도시락이 부럽다고 했던 친구들은 이내 관심이 사그라들었는데, 아이가 싸가는 음식이 평소 먹기 힘든 진귀한 것들이 아닌 흔하디 흔한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이었기 때문이다. 내 딸이 날마다 비슷비슷한 도시락을 먹는 동안 친구들은 날마다 새로운 반찬이 나오는 급식을 먹었다. 아이가 급식을 먹는 게 엄마가 미안해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아이의 친구 중에 누군가 '내 딸을 너무 부러워하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도시락을 싸달라고 졸랐는데 못싸줘서 그 엄마는 아이한테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진짜 그런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는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염려해서 아이한테 먹기 싫은 급식을 참고 먹으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나는 차라리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말겠다. 이번에 깨달았다. 나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동안 쓰고 있던 착한 사람 가면이 살짝 벗겨진 기분이다.
전에는 나를 비난하는 댓글이 무서워 댓글창을 막을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맷집(?)이 조금 늘어나는 기분이랄까. 그런 댓글에 기분이 상하는 건 잠깐이고, 나를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글을 쓰면서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지적이나 비난을 받으면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모자랄까? 생각의 폭이 넓고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반성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든 생각은 '생각이 깊어 이것저것 두루두루 살피고 헤아리고자 한다면, 나는 아무런 결론도 못 내리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아무 색깔 없는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댓글 하나에 이렇게 흔들리는 건, 지금껏 살아온 삶에 가치 판단의 기준이나 신념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나 눈치껏 행동하고 내가 결정하기보다 결정된 삶에서 동동거리며 살았다. 욕먹을 일은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글을 쓰면서 전에 없이 욕을 먹고 있는데, 이게 자꾸 먹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음미하며 잘근잘근 씹으니 피가 되고 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