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혼자 있는 집안은 조용하다. 나는 음악이나 텔레비전을 틀지 않고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한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문 앞에서 '부스럭' 혹은 '철퍼덕' 소리가 날 때가 있다. 택배가 온 거다.
평소에는 택배를 챙기기 위해 일부러 문을 열지 않는다.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 챙기거나, 누군가 들어올 때 들고 오겠지 하고 놔두는 편이다. 그날은 문밖에서 스티로폼 박스를 내려놓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열었다. 부모님이 해남 땅끝마을에서 전복 양식업을 하신다는 남편의 후배가 보낸 전복이 온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저녁거리가 없었다. 전복이 저녁 늦게 도착한다면 라면을 먹을 것인지, 귀찮더라도 장을 보러 나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다행히 오후 4시에 전복이 도착했다. 포장을 열어보니 내 손 크기만큼 커다란 전복 열세 마리가 들어있다. 솔로 박박 문질러 씻고 껍질을 분리해야 하는데 어찌나 딱 달라붙어있던지 떼어내느라 팔이 빠질 뻔했다. 작년 여름에 전복 요리를 할 때, 끓는 물에 10초 정도 올렸다 꺼내면 껍질을 쉽게 분리할 수 있다는 걸 검색해서 알아뒀었는데... 다 떼내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이다.
어쨌거나 전복은 손질이 끝났으면 요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전복은 별도의 조리 없이 그냥 썰어서 회로 먹어도 맛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전복 버터구이다. 전복버터구이는 전복에 칼집을 넣고,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굽기만 하면 된다.
고소한 버터향이 나면서 보들보들 쫄깃한 전복을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씹으니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다. 버터구이를 하고 남은 전복 두 마리와 전복 내장, 채소를 잘게 썰어 넣고 죽을 끓였다. 재료를 참기름에 볶아서 물을 넣고 끓이면 되니 이 또한 매우 간단하다. 전복죽이 끓으면서 나는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입안에서 폭죽이 계속해서 터진다. 식욕도 터진다. 김치를 얹어서 두 그릇을 먹었다.
전복은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고 비타민과 철분, 칼슘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전복에 들어있는 이런 성분들이 피로해소와 기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요즘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피곤하고 매사 짜증스러웠는데, 저녁 한 끼로 기분이 확 달라지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 드라마(히어로는 아닙니다만)를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밥 먹어. 행복은 밥에서 나오는 거니까"
맞는 말이다. 앞으로 피곤하고, 짜증 난다면 밥부터 먹어야겠다.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물가가 너무 비싸 손이 자꾸만 작아지는 요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복을 보내준 남편 후배와 해남 땅끝마을에서 전복 양식 하시느라 고생하시는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홍어와 곱창김이 먹고 싶어 택배로 주문을 했는데, 홍어는 흑산도에서, 곱창김은 완도에서 왔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머나먼 섬에서 누군가의 피땀이 깃든 음식이 내 집 문 앞에 도착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넘어 감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