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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pr 26. 2024

경찰서에서 고3 아들한테 보낸 우편물의 전말

며칠 전,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보니 우편함에 우편물이 꽂혀있었다. 수신인은 고3 아들이었다. 지난번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고 아들한테 온 우편물을 아무 생각 없이 뜯어봤다. 그랬더니 아들이 자신의 우편물을 마음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내 눈에는 아직 내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아이 같은데, 주민등록증 만들 나이가 됐으니 존중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밤 열한 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다. 아들이 올 때까지 봉투만 쳐다보며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왜냐면 발신지가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경찰서'였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아들한테 왜 우편물을 보냈지?"

걱정이 앞서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들이 이번 일은 이해해 줄 거라고 믿고,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두 장의 문서가 들어있었다. 제목은 '수사결과 통지서(고소인 등, 송치 등)'라 적혀있다. 죄명은 사기, 결정종류는 송치, 사기와 송치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접수일시가 3월 말이니 얼마 안 된 일이다. 아래쪽으로 범죄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에 대한 안내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기, 송치, 범죄피해자... 도대체 무슨 일이지?'

주요 내용은 '별지와 같음'이라 적혀있는 걸 보고 뒷장을 살펴봤다. 뒷장에는 아들이 사기로 신고한 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사기죄가 성립되어 그 사람을 송치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일단 아들이 사기죄라는 얘기는 아니니 안심을 했다.

'그렇다면, 아들이 누군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나한테는 아무 말이 없었을까? 혼날까 봐 그랬을까?'


궁금한 걸 겨우 참으며 아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경찰서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니?"

"아, 이거 제가 인터넷 장터에서 에어팟을 샀는데, 분위기가 싸해서 바로 신고한 거예요."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돈 보내고 나서 사이트 차단되고 이상해서 신고했어요. 신고하고 나서 돈을 바로 돌려받았고 해서 말씀 안 드렸어요."


"얼마에 샀는데?"

"22만 원요. 그런데 바로 돌려받았어요."


"돈은 어떻게 받았어?"

"사기당한 사람들 단톡방이 생겨서 들어갔거든요. 거기에 판매자도 들어와 있었는데 미성년자 같더라고요. 부모님이 변제 못해준다고 했다면서 사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 필요 없으니 고소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낸 돈에 피해보상금 추가해서 더 받아야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저는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낸 돈만 돌려받겠다고 했더니 바로 돈을 돌려줬어요."


"다행이다. 그런데 넌 22만 원이 어디서 났니?"

"용돈 모은 거죠. 돈 모으기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싼 거 사려고 한 거고요."

"밥도 잘 안 먹고 다니더니 그거 사려고 그랬어? 애써 모은 돈 다 날릴 뻔했잖아. 웬만하면 중고 거래 하지 마. 특히 너무 싸게 파는 물건은 사지 마."

"네."

"이번 일은 잘 해결했어. 다음부터는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도 말해줘."


몇 해 전, 아들이 중학생 때 중고 장터 판매자를 직접 만나 피규어(figure)를 사가지고 온 적이 있다. 아들은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만났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이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부터 중고 거래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일을 내게 말하지 않은 건, 내 말을 듣지 않고 중고거래를 하다가 발생한 일이라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중고 거래 사기에 관한 뉴스를 가끔 접하곤 한다. 중고 거래 사기는 아들이 당한 것처럼 돈만 받고 물건은 안 보내는 수법 외에도 상상하기 힘든 다양한 수법들이 생겨나고 있기에, 나는 중고 거래를 선호하지 않는다. 안전한 플랫폼에서 가격비교를 해 새 상품을 구입하고, 팔아도 괜찮을 것 같은 물건이 있어도 팔기보다는 주변 지인들과 나눔을 하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인 막내딸도 자신이 샀다가 필요 없어진 물건이 있으면 친구의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거나, 몇 백 원이라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중고 거래가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린 거다.


사실 중고 거래의 취지는 매우 좋다. 내게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꼭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니 경제적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좋은 취지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중고거래는 불안하니 하지 말라고만 하기보다는 중고 거래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중고거래 시, 상대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미리 알 수 있을까? 내가 조사해 본 중고 거래 사기 예방법으로는 직거래 위주로 거래하기(고가의 물건이라면 경찰청 앞이 가장 좋은 장소), 판매자의 활동 내역 및 정보 확인하기, 지나치게 싸게 파는 경우는 피하기, 안전거래 링크 보내는 경우 피하기(가짜 사이트로 연결됨), 더치트(사기정보 공유 웹사이트)에 조회해 보기 등이 있다.


이 방법들은 날로 진화하는 사기 수법에 비해 턱없이 나약해 보인다. 아들이 당할 뻔한 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아들 외에도 수십 명이 더 있다고 한다. 그들도 조심한다고 했지만 당했을 것이다.


아들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직후에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에 온라인으로 신고를 했다. 이 사이트는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 피해자 본인만이 신고가 가능하다. 가족 등 대리인이 신고할 경우에는 경찰청에 직접 방문하거나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또,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운영하는 '온라인피해 365 센터'가 있으며, 이 사이트에서는 온라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피해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아이도 많이 배웠겠지만, 나도 많이 배웠다. 살면서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 같았던 아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앞으로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 아들의 우편물을 먼저 뜯어보지 않는 부모가 되기로 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와 동시 게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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