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Aug 23. 2022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유리 멘탈을 강화유리로 만들어 보고자 노력 중입니다~


감기에 걸린 지 일주일이 넘었다. 공짜 좋아하다가 당한 것 같다. 여행 가서 공짜 에어컨이라고 너무 세게 틀고 잤나 보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기침 때문에 힘들고 잠을 제대로 못 자다 보니 낮 동안 개운하지가 않은 날들의 연속이다. 차라리 코로나에 걸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콕 박혀 있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개운하지 않은 몸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음 상태를 만들었다. 평소에 내가 처리한 일에 대해 잘했다고 하시던 사장님이 어제는 내 생각과 달리 질책을 하시자 급 의기소침해졌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힘들게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불렀으나 음식이 다 식도록 모여주지 않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들, 여기저기 놓인 물컵들, 막내딸이 그림 그리다 던져놓은 종이 같은 어수선한 것들만이 눈에 띄었다. 간신히 화를 누르고 저녁시간을 버텼다. 한번 화를 터트리고 나면 참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띵 다. 명상은 뭐하러 하나, 책은 왜 읽어야 하나... 책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책을 덮고 등교한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 보니 쓰레기장 같은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겠다고 벌려놓은 일들로 인해 집안일에 소홀해진 티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나의 긍정적인 마음이 나 대신 청소를 해주거나 아이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해 주지는 않으니까.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답답한 마음으로 사무실이 있는 운정역에 내려 육교를 걸었다. 얼핏 본 하늘엔 회색 구름이 가득했다. 조금 더 걷다가 우연히 반대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분명 조금 전 본 하늘은 회색이었는데, 반대편 하늘은 너무나도 예쁘게 파랬다.

다시 한번 양쪽을 번갈아 보니 왼쪽엔 회색 구름이 가득한데 오른쪽은 선명한 파란 하늘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을 보니 아래쪽엔 회색 구름이 위쪽엔 파란 하늘이 겹치는 지점이 보였다.


아침에 본 회색 하늘(왼쪽)과 파란 하늘(오른쪽)


육교에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급하게 뛰어온 남자가 거의 닫혀가는 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라고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 남자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걸으며 내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해서 어제 잘 안 풀렸던 일의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일을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을 때

"좋은 하루 되십시오."

라는 그분의 말에 나는 훨씬 괜찮은 기분이 되었다.


내 마음엔 하늘이 있다.

회색과 파랑이 공존하는 하늘.

가끔 회색 구름이 내 마음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더 높은 곳에 파란 하늘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다. 유리 멘탈인 나에게 회색 구름은 시시때때로 찾아올 것이지만 회색 구름이 사라진 후 더 선명하고 눈부신 하늘을 기대하며 괜찮다고 말해 줄 것이다.


"지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회색 구름이 걷히고 나면 이전보다 훨씬 괜찮아질 거야."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삶에 회색 구름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 아니라 회색 구름에 지배당하려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함이 아닐까?


점심시간이 되어 밖에 나가보니 하늘에 회색 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아침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날마다 고향에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