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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06. 2022

발걸음을 늦추어, 나란히


비 내리는 한가한 주말 오후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앞에 가고 있는 네댓 살 여자아이가 입은 드레스가 눈에 띈다. 막내딸이 저 나이 때 입었던 보라색 시크릿 주주 드레스였다. 몇 번 입고 작아져서 딸의 친구 동생 입으라고 물려줬었다.

'혹시 그 옷이 저 아이한테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길이 계속 그 아이 뒷모습에 머물렀다. 아이 엄마는 뭐가 급한지 아이보다 한참 앞서 가고 있었다. 아이는 우산을 앞으로 하고 우산에 그려진 뽀로로를 보느라고 비를 맞는다. 내가 뒤에서 비 다 맞는다고 알려줘도 정신없이 뽀로로만 보고 걷다가 엄마가 옆길로 꺾어져 걷는 줄도 모른다.

'아이 엄마는 아이 챙기는 게 제일 중요하지 뭐가 저리 급해서 앞서 가고 있는 걸까?'

아이한테 엄마 저쪽으로 갔다고 말해주는데 엄마가 돌아보고 아이를 부른다. 어차피 아이와 함께 가야 하는 길인데 걸음 좀 늦추는 게 그리 힘든 일일까?


하긴, 나도 그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걸음도 느리고 주변에 신기한 게 나오면 보러 달려가 버리니 목적지까지 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의 선택은 유모차나 자전거, 아니면 내 걸음에 맞춰 '빨리빨리'를 외쳐댔다.


이제 아이들은 나와 걷는 속도도 비슷하고 옆길로 새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걸어주지를 않네.




지난주에 도서관 가는 길에 앞에 한 노인이 걷고 있었다. 어깨가 많이 굽고 마른 노인. 어깨가 너무 굽어 땅을 보고 걸을 수밖에 없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살면서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저리 어깨가 굽었을까 안타까웠다.


노인보다 한참 앞에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걷고 있었는데,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노인에게 뭐라고 하니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와 아들인 것 같았다. 앞선 남자는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노인을 살폈지만 두 분의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았다.


흔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서로를 걱정하고 보살피지만 다정하게 나란히 걷기는 어색한 사이. 아들이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한참 앞서 걸으며 아들을 살폈을, 옆모습이나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익숙한 사이.




내가 아주 어릴 적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아빠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고 그 손이 매우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고작 손을 잡고 걸었을 뿐인 그 기억이 왜 오랜 세월 동안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아빠가 내 걸음에 맞춰 나란히 걸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살면나 보다 걸음이 느린 누군가를 위해 내 걸음을 늦춰본 적이 얼마나 있었나?

삶에서 사랑하는 아이, 혹은 부모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뒷모습을 더 많이 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오늘도 뒤따라 오는 이에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면 기억하자. 가 느린 게 아니라 내가 빠른 것이다.

내 발걸음을 추자. 조금 늦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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