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내려놓고 두 시간 동안 저녁을 먹었더니

조용했던 우리 가족에게 생긴 변화

"내가 먼저 말할래."

"나도 말 좀 하자."

유독 말이 많았던 두 살 터울의 어린 남매는 내 귀를 두고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육아로 고단했던 내 몸 중 단 한 군데를 쉬게 할 수 있다면 두 번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귀'라고 대답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 남매가 고3, 고1이 되고, 초4인 막내까지 가족이 늘었음에도 지금은 집안이 매우 조용하다. 모두들 휴대폰을 들고 각자의 세상에 빠져있는데, 가끔 집안이 시끄러운 날이 있다. 말없이 귀가 시간이 늦거나 방안을 어질러놓고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와 남편이 잔소리를 퍼붓거나,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다툴 때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있는 어느 집에나 있는 풍경이라고 넘기기에는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나는 고민 끝에 가족 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대화가 없기 때문이고, 대화가 없는 건 같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2년 전에 했던 우리 가족 대화를 위한 특별 해결책을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2년 전, 나는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나면 휴대폰을 붙들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족 간에 대화가 사라졌다는 걸 느끼고는 '가족 회식의 날'이라는 걸 만들었다. 다달이 세 번째 토요일 저녁 6시부터 두 시간 동안 저녁을 먹는데 '두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있기'와 '휴대폰 사용금지'가 우리 회식의 규칙이었다.

처음에는 배달 음식을 시켜 놓고 평소처럼 별말 없이 먹기만 했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앉아있어야 하니 조금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음부터는 각자 요리를 하나씩 만들어 두 시간 동안 코스요리처럼 먹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다음 달부터 나와 남편이 메인 요리를 만들고, 아이들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리나 쿠키, 푸딩 같은 디저트를 만들었다. 각자 요리를 준비하다 보니 대화 내용이 훨씬 풍성해졌다. 요리를 준비하게 된 계기, 레시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 학교 이야기가 따라 나왔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다 함께 저녁을 먹는 두 시간 동안은 세상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하게 느껴졌다.

2년 전, 가족이 함께 만들어 차린 저녁 식탁

'가족 회식의 날'은  6개월 정도 계속되다가 큰애의 학원 스케줄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나는 그때 겪었던 가족의 변화를 떠올리며, 최근 겪고 있는 우리 가족의 갈등 해결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갈등의 골이 더 깊은 것 같으니 한 달이 아닌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 저녁을 다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찬성했고, 아이들은 어려워하는 듯했으나 단 몇 주만이라도 해보자고 협박을 했다.('너만 빼고 맛있는 거 먹을 거야, 안 오면 용돈 깎는다' 같은)

한 달 전, 첫 번째 화요일에는 집에서 내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과제를 핑계로 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고기뷔페를 갔는데 음식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고, 둘째가 선약이 있었다는 통보만 하고 빠지는 바람에 남편이 화가 났다. 괜히 갈등 상황을 더 만드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3주 차부터 대화에 물꼬가 조금 트였다. 양꼬치 집에 가서 양꼬치와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주문한 요리 중에 마라탕이 있었다. 딸아이가 아빠가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자주 만들어줬던 마라탕이 더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먹으러 갔던 마라탕 이야기도 했다. 내가 묻지 않은 이야기를 아이들이 먼저 꺼내 수다를 떠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아빠표 마라탕

4주 차, 드디어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그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 집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치킨을 배달시켰다. 치킨을 먹다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두 달이나 골프를 배웠는데 실력이 영 늘지 않아 그만둬야 하나 싶다고, 속 상하다고 말했다.

"자기야, 두 달이나 한 게 아니고 두 달밖에 안 한 거야. 될 때까지 하면 돼."

남편이 나를 격려하자, 아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 양 없는 질은 없대요."

"와, 그 말 정말 멋지다."

내게 그런 조언을 해주는 아들이 훌쩍 커 보였다. 잠시 후에 멜론을 먹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으로 멜론이 나온 이야기와 친구들이랑 멜론 빙수 먹은 이야기를 했고, 학교와 친구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했다.

나는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끼고 산다고 걱정했는데 아이들도 나름 고민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가 친구와 서로 휴대폰 사용 제한 시간을 걸어두고 1시간 30분 이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동안 조용한 집안 분위기에 맞춰(?) 게임과 유튜브를 하며 말이 없던 막내딸이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 친구 이야기와 친구네 강아지 이야기, 공원에서 놀다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등등.

오랜만에 아이들의 목소리로 집안이 시끄러웠는데, 내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운 화요일 저녁이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 화요일엔 뭐 먹지? 행복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