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40분, 밖에서 아이들 몇 명이 합창하듯 딸아이(초등 4학년)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가 머리를 빗다 말고 가방을 둘러메고 뛰쳐나간다.
산책을 하려고 아이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키가 들쑥날쑥한 여자 아이들 넷이 재잘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날마다 붙어 다니면서 저렇게도 반가울까, 뒷모습마저도 생글거리는 듯하다.
골목을 빠져나가 몇 미터만 가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후문이다. 아이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는 학교 담을 따라 걸었다. 정문 앞에는 1967년에 개교한 이 학교만큼이나 오래돼 보이는 문구점이 있다. 문구점 사장님이 밖에 서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인사를 하셨고, 나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내가 이 문구점에 자주 들렀던 건 10여 년 전, 지금 고3인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였다. 사장님은 문구점에 오는 모든 아이들의 이름과 아이 엄마가 누군지도 알고 계셨다. 날마다 문구점에 들르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시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대단한 건 몇 해 동안 문구점을 가지 않았는데도 계속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 거였다.
최근에 막내를 데리고 오랜만에 문구점을 갔다. 오랜만에 갔기 때문에 우리를 기억 못 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이 막내딸에게 말을 걸었다.
"지안이 많이 컸네. 언니 이름 지민이 맞지? 오빠는 벌써 고등학생이겠다."
"사장님, 무슨 초능력 있으세요? 어떻게 애들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세요?"
내 말에 사장님은 그저 빙그레 웃으셨다.
문구점을 지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마트에 들렀다. 나는 평소 대형마트를 선호하지 않는다.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도, 사람도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 날마다 필요한 만큼만 장을 보는 게 좋아서 집 근처 소규모 마트를 즐겨 찾는다. 우리가 이 동네에 산 게 11년째이니 이 마트도 11년째 단골인 셈이다.
지금은 재택근무 중이라 낮에 마트를 가지만, 작년까지는 퇴근길에 항상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샀다. 낮에 아이들이 마트에 들른 날이면 사장님이 내게 "아까 막내딸이 아이스크림 사러 왔었는데 키가 되게 많이 컸어요."라든가 "오빠가 동생 과자 사준다고 같이 왔었는데, 동생을 되게 예뻐하는 것 같아요." 같은 말들을 해줘서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곤 했다.
오늘은 김밥 재료 세트와 계란 한 판을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어디 놀러 가세요?"
"아뇨. 딸내미가 김밥이 먹고 싶다네요."
"아,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어묵이 있는데, 괜찮으면 하나 드릴까요?"
"저야 좋죠. 고맙습니다."
전화번호 뒷자리를 말하고 포인트를 적립해야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자동 적립이 된다. 대형마트에서는 나를 아무리 "고객님~"이라고 깍듯이 불러줘도 아무 감흥이 없지만, 동네 마트에 오면 내가 정말 'VIP 고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물건이 한눈에 보여 편리한 동네마트
마트를 나와 집 쪽으로 걸어가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앞집 어르신을 만났다.
"어디 갔다 와?"
"네. 장 보러요."
"뭐 해 먹어?"
앞집 어르신은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보내지 않고 이것저것 근황을 물으신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 빌라로 이사 오셨고, 내가 막내딸을 낳았을 때 소고기랑 기저귀를 사다 주셨다. 앞집 어르신은 부모님 보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셨다.
우리 집 아래층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같이 여행을 다닐 만큼 친하게 지낸 가족이 살았다. 그 가족은 얼마 전에 낡은 동네, 20평대 좁은 빌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기에 불편하다며 경기도의 한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래층 가족이 이사 간 뒤, 나도 고민이 많았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전세를 옮겨 살다가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직전에 이 빌라를 샀다. 학교와 도서관, 공원, 지하철, 시장이 가까워 생활이 편리하고 물가가 싼 편이라 좋았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값을 보면 한숨이 났다. 형편에 맞게 이 빌라를 살 게 아니라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집이 비좁아지기도 했고, 낡고 지저분한 골목길 대신 잘 가꿔진 산책로가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서울 아파트는 이제 내가 아무리 무리한 대출을 받아도 살 수 없는 금액까지 올라갔기에,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를 가볼까 싶었다.
이사 이야기를 꺼내자 막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사 가서 또 사귀면 되잖아. 더 넓은 집에 네 방까지 생기는데 좋지 않아?"
"난 싫어. 이사 가도 전학은 안 갈 거야!"
첫째와는 여덟 살, 둘째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막내딸이 태어났을 때, 첫째, 둘째의 친구들과 그 엄마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가 많았다. 어딜 가나 서로 안아주겠다고 줄을 섰고, 문구점, 세탁소, 마트 사장님 등 이웃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그런 이웃들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 살고 있으니 아이가 혼자 놀러 나가도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막내딸을 키운 건 나 혼자가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껏 10년을 살아온, 아이한테는 고향인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찬찬히 동네를 둘러보니, 우리 동네에는 신도시 아파트에는 없을 확실한 인프라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10년 넘게 살면서 만든 '다정한 이웃과 친구 관계 인프라'라고나 할까.
아이들의 등교길이자 나의 출근길
"엄마, 나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 행복해."
주말 오후에 친구들과 공원에서 물놀이를 하고 옷이 다 젖어 들어온 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다. 내가 이동네를 떠나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고 한 것은 아이한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기 때문인데, 날 보는 아이의 표정이 '지금 여기가 내겐 최고의 환경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