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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16. 2024

전어의 추억

집 나간 사람도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의 계절이다. 얼마 전에 전어회에 소주를 맛있게 먹는 어느 유튜버를 보고 난 후로 전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에 시장 안 생선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전어회를 한 접시 오천 원에 팔았다. 혼자 먹기 딱 좋은 양이었다. 사가지고 와서 잠시 김치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냈다. 초장을 듬뿍 찍어 깻잎에 싸서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그런데 전어 맛이 왜 이렇지? 내가 아는 맛이 아니잖아! 


내가 기대한 고소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전어 맛에 실망하고 있을 때, 외출했던 딸아이가 돌아왔다.

"엄마 뭐 먹어?"

"전어회. 먹을래?"

깻잎에 싼 전어회를 딸아이 입 속에 한 점 넣어줬다.

"음, 맛있다."

"그래? 그럼 너 다 먹어."


딸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 점 먹어보니, 조금 전과는 달리 고소함이 입안을 휘감는다... 아, 나는 그냥 전어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누구랑 같이 전어를 먹고 싶었던 거였어!



<17년 전쯤의 전어>

그때 우리는 낡은 빨간 벽돌 주택 2층에 살았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집이었다. 그 집에 사는 단 하나의 장점이 있다면, 옥상을 우리만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름에 땅콩모양의 수영장 튜브에 물을 채워 넣고 아이를 놀게 하고, 남편과 나는 그 옆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을 때는 옥상에서 전어를 구워 먹었다. 온 동네에 전어 냄새를 풍기면서...


<11년 전쯤의 전어>

딸아이의 생일이었다. 아이의 생일이지만 고생한 건 나라며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갔다. 우리는 횟집에 가서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먹었다. 내가 옆에 벗어놓은 코트를 딸아이가 입더니 허수아비처럼 춤을 췄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1년 전의 전어>

남편과 함께 이승철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오는 길에 아래층 어르신께 전화가 왔다.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이 큰 일을 다툼 없이 잘 해결했다. 그 일을 통해 나는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왜 벌어졌는지 보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고, 그게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밤, 남편과 먹었던 게 전어회, 전어구이와 소맥이었다.

26화 아래층 천장에서 물벼락이 쏟아진다는 전화를 받았다 (brunch.co.kr)


전어와 함께 한 추억들이 생각나서 가을이면 그렇게 전어가 먹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과 지난 추억 이야기를 하며 전어를 먹으려고 동네 횟집을 갔는데 문 앞에 커다랗게 '전어 품절'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바다가 뜨거워져 올해 전어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더니, 언젠가 가을 전어가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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