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간 오전 아홉 시, 청소를 하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세게 분다.
"와, 무슨 태풍이 부네"
니트 하나 걸치고 나간 딸아이(고1) 생각이 났다. 아이는 오늘부터 2박 3일간 학교 수련회를 떠났다.
어제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는데, 아이는 쇼핑을 다니느라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서 들어왔다.
"엄마, 밥 있어? 배 고파 죽을 거 같아."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닌 거야?"
나는 저녁으로 끓인 순두부찌개와 고구마를 꺼내놓고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새로 산 옷을 입어보느라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찌개가 다 식어가는데, 식으면 맛없는데, 몇 번을 부르다 짜증이 났다.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 뒤에야 아이가 나왔다.
"왜 화를 내고 그래?"
난 애들 배고프다는 말이 제일 무서운데, 배고프다면서 빨리 안 나오는데 화 안 나게 생겼냐고.
밤늦게까지 새로 산 옷을 입어보고, 짐을 싼다고 옷장 안의 옷을 다 꺼낸 아이의 방안이 엉망이다.
"패션쇼 가냐? 적당히 하고 자라."
오늘 아침, 아이가 아직 젖어있는 신발을 신고 가야겠다고 한다. 그 신발은 젖었을 뿐만 아니라 낡아서 뒤축이 너덜너덜한 신발이다.
"야, 위에만 이쁘게 하고 가면 뭘 해? 애들이 너한테 냄새난다고 할 거야. 이 신발 신으면 꼬랑내 엄청날 거라고. 다른 신발 신어. 아니, 저번에 신발 사라고 돈 줬는데 왜 신발은 안 샀어?"
2박 3일간 집 떠나는 아이한테 또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래도 아이는 기어이 그 신발을 신으려고 한다.
"잠깐 있어봐."
아이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아는 나는 급하게 드라이기로 신발을 말렸다.
아이가 신발이 따뜻해서 좋다며 집을 나섰다. 그 뒤로 첫째가, 남편이, 막내가 집을 나갔다. 나는 청소를 하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깜짝 놀랐다. 멋 낸다고 니트 하나 걸치고 나간 딸아이가 점퍼를 꺼내 입기를 바라기보다는 바람이 멈춰주기를 바라는 편이 현실적이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지금 봐도 예쁜 언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