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벗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떨린다. 숙제 검사받는 기분이다. 한 달 동안 열심히 하긴 했는데... 인바디 측정 결과는 과연?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던 걸 안 걸은 것뿐인데 자꾸만 살이 올랐다. 초반에 1,2kg 정도 쪘을 때는 먹는 걸 조절하면서 체중을 되돌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하고 놓아버리니 5kg이나 늘어버렸다.
최근에 내 뱃살의 심각성을 깨닫고 장내 호르몬 균형을 맞춰주는 유산균을 먹으면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야식과 술 마시는 횟수도 확 줄이고 전보다 많이 걸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노력했는데 몸무게는 500g 정도를 왔다 갔다 하며 제자리걸음이라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 1층에 있는 골프연습장을 갔다가 건물의 꼭대기층인 6층까지 걸어 올라가 볼까 싶었다. 어느 건강 관련 유튜브에서 계단 오르기가 걷기보다 근력과 유산소 운동에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 나서다.
힘겹게 6층까지 올라가 보니 거기에... 딱 헬스장이 있었고, 유리문 너머로 딱 '천국의 계단'이라는 운동기구가 보였다. 마치 '여기 들어와서 해, 계단 오르기' 라며 날 부르는 것 같았다.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분도 왠지 친절할 것 같았고, 마침 여름맞이 할인을 한다는 문구도 내 마음을 이끌었다. 나는 그렇게 갑자기 헬스장을 6개월 등록했다.
운동 첫날에 인바디 측정을 했다. 예상대로 나는 근육량은 모자라고 체지방량은 넘친다. 특히 복부지방이 그렇다.
헬스장에서 무료로 해주는 두 번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서 PT를 받을까 살짝 고민도 했지만 금액이 부담스러워서 일단 혼자 해보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러닝머신과 오리엔테이션 때 배운 몇 가지의 근력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동영상을 검색했다. 기구에 부착된 큐알코드를 찍으면 운동법을 볼 수 있는 동영상이 나오기도 하고, 유튜브에 기구 이름을 검색하면 친절하게 알려주는 영상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근력운동은 재미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근육에 느껴지는 통증이 힘들다기보다는 짜릿한 맛이 있다.
러닝머신, 천국의 계단, 마이마운틴, 사이클 같은 유산소운동은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인터벌 트레이닝을 해주는 유튜버들이 많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서 운동하면 같이 운동하는 것 같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기분도 따라 올라간다.
운동이 재밌어도 집밖으로 나가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가서 샤워나 하고 오자며 나를 달래서 데리고 나간다. 6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면서 일단 왔으니 러닝머신 20분만 하고 나오자 생각한다. 러닝머신을 하고 나면 하나만 더 할까, 이것만 해볼까 하다가 1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주 5일 1시간~1시간 30분 즐겁게 운동했다. 살 빼려고 억지로 한 게 아니라 정말 재밌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다시 인바디 측정을 했다. 처음보다 근육량이 0.8kg 늘고 체지방은 2.8% 줄었다. 반면 체중은 겨우 400g이 줄었을 뿐이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지금 잘하고 계신 거예요. 아무래도 연세가 좀 있으셔서 젊은 사람들처럼 체중이 확 빠지기는 힘들 겁니다. 체중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인바디 측정을 해준 헬스장 대표님의 말 중에 '연세가 좀 있으셔서'라는 말이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젊은 헬스장 대표님이 모르는 게 있다. 연세가 좀 있는 사람은 확 빼기는 힘들지만 천천히 빼기는 잘할 수 있다. 나는 젊을 때 없었던 끈기와 성실함이 생겼으므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될 때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차분히 밟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