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배우다
퇴직을 했다. 직장이라는 족쇄를 풀었다. 출근이라는 단어가 인생에서 사라졌다. 마음이 가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헛헛했다. 두 달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서 뒹굴며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거나 책을 읽었다. 짬짬이 솟아나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이내 몸에 밴 습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또 다른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두 달의 고민 끝에 후자를 택하였다. 가장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평생교육원의 수필 쓰기 과정에 등록했다. 한 번도 글을 쓰거나 배워 본 적이 없어 내면에 숨어 있던 용기를 끌어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다양한 시선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듯이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학창 시절 배운 순위 공부도 직장처럼 치열한 경쟁의 장이 아닌 희망과 능력에 따라 마음껏 펼쳐 보이는 창작공간이었기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무렵 연금공단에서 블로그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블로그에서 책 소개나 여행, 에세이 등 다양한 글을 쓰는 이웃들과의 만남은 자주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글 속에서 순수한 눈웃음이 만개한 어린아이였다가 때론 반항으로 찌든 거칠 것 없는 청년이었다가 어떤 순간에는 일상에 허덕이는 직장인으로, 다시 부모로, 딸로 무한 변신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내 글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멩이처럼 미숙함으로 곳곳에 거칠고 울퉁불퉁한 홈을 만들어 냈다. 오랜 세월 고착된 아집과 이성의 단단함을 뚫고 나오지 못하지만,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글이 쌓이자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평생교육원에서 전자책 만들기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끄럽고 둥글게 다듬어진 빛나는 조약돌 같은 글이 아니라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석 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나고 새로운 글로 채워나갔다. 즐기면서 여유롭게 살자는 삶의 방식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포기하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스스로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60대에 ‘내 인생의 작가가 되다’라는 제목의 전자책을 발행할 수 있었다.
인생 후반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외롭고 쓸쓸한 삶이 되리란 두려움에 더 내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퇴직 후 각자 자신만이 가고 싶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일이 될 수도 있고 자기실현을 위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선택은 글쓰기였다. 삶이 달라 보였다. 아무도 평가해 주지 않지만 스스로 만족한다면 잘사는 삶이 아닐까. 나의 글쓰기는 계속 진행형이다. 오늘도 나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