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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Nov 29. 2021

산길 21KM를 걷다

드디어 해냈다.

물론 무리해서 걸었다.

오늘 계획한 코스가 더는 줄일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초보 때처럼 힘들거나 다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일요일 하루, 약 10시간의 산행을 계획하고 시작을 한다. 해가 짧은 겨울은 오후 5시만 되면 산길이 어두워져서 이른 시간에 시작을 해야 위험하지 않게 하산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다.

첫차나 두 번째 차를 타고 시작 지점에 도착하면 6시 전이다. 큰 길가는 가로등도 많고 상가들이 간판의 불을 켜놓는 경우가 많아 훤하다. 하지만 산 입구에 들어서면 사방이 어둡다. 나뭇가지에 가려져서 산 길은 더욱 어둡다. 라이트를 켜고 걸어야 안전하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덜 무섭다.

계획했던 코스를 하나 둘 완주하고 나면 뿌듯하다. 관악산은 산길이 다양해서 재미도 있다.

연주대 정상까지 도착하려면 두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그 이후부터는 자유자재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심장박동이 거칠어져서 숨을 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코스가 있다. 일부러 그 코스를 간다.

심장을 단련하기 위해서도 적격이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 호흡이 거칠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론 호흡에 집중하며 산을 탔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니 평지를 걸을 때는 조금 빠르게 걸어도 호흡은 평온하다.

관악산의 굵직한 코스는 모두 돌고 나서 서울대 공대 계곡으로 내려와 삼성산으로 방향을 돌린다. 삼성산 정상의 높이는 400여 미터 정도이지만 멋진 돌들이 능선에 즐비하다. 길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함부로 돌을 넘어갈 생각하기가 어렵다. 돌 위에 올라섰을 때 내려가는 방향을 잡기가 어려운 때가 많이 있다.

이미 여러 번 그와 같은 경우를 경험했고 그럴 때마다 올라갔던 길을 돌아 내려와 다시 길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어플로 알려주는 길도 무용지물이다. 가보지 못했으면 찾기조차 힘들다.

지도상에 분명 학우봉이 표시되어 있는데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번에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또 다음을 기약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걷다 보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음악을 틀고 걷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 있으니 산짐승은 도망가고 사람은 주의하시라는 뜻이다.

나로 인해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데 가끔 음악소리로 나를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내가 자신을 유인하기라고 했다는 듯이.

불쾌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꾹 눌러 담고 먼저 가라고 길을 내어 준다. 그러면 당황하다가 쌩하고 가버린다. 가끔은 악질도 있다. 내가 가려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따라오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배낭을 내리고 쉬어 가야 한다. 2, 30분의 텀을 두면 대체로 따돌리는데 적당하다. 하지만 쉬고 싶지 않아도 쉬어야 한다. 배낭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어 먹으며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건전한 산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일부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족들이 있다. 세상이 험하다 보니 최대한 이상한 사람은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 덕에 공격보다는 방어를 하는 편이다.  

그래도 아직은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길을 물으면 최대한 가르쳐 주려고 애쓰고 힘들어 보이면 격려의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흉흉한 세상 분위기 때문에 조심하는 눈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따뜻한 응원을 받을 때가 있다.

계획했던 코스를 모두 돌고 내려오면 커다란 성취감을 선물 받는다.

누가 칭찬을 해서가 아니고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건강해지는 것을 확인받는 기분도 든다. 나는 6개월 주기로 나의 건강 상태가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다.

한 주, 한 달 간격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수월해지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낯선 길이 무섭기만 했는데, 이젠 가보지 않은 길도 두렵지는 않다. 해가 지기 전에 정상 경로로 내려가야 한다는 강박만 없다면 안 가본 길도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 욕심은 해가 길어지는 여름으로 미루기로 한다. 우선은 안전 산행이 제일이다.

아는 길이라고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방향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무리 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쉽지 않다.

공룡능선을 타고 온 뒤부터 나에게 산을 타는 목표가 생겼다. 해마다 두 번 정도 좋은 시기에 공룡능선을 타는 것이다. 아니 설악산을 종주해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체력이 길러져야 한다. 좋은 것만 보고 오기에는 체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모자란다.

국내에도 이렇게 볼 것들 경험해 볼 만한 것들이 차고 넘친다. 국내 좋은 곳들 찾아다니며 좋은 경험 쌓으며 살아보기도 부족한 듯하다.

다이어트를 해서 살을 빼는 것도 좋지만 체력을 길러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이어트를 병행하려고 한다.

20KG 감량이 목표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년 안에 해 낼 것이다. 건강하게 날씬해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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