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살고 있는 여행메이트와 둘이 초가을 여행을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실현이 될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뜻밖에 먼저 연락이 왔다.
그 여행, 시작해 보자고.
첫째 날에는 우리가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구에서 오는 그와 경기도 남부에 사는 내가 만날 접점은 서울역으로 결정됐다.
서울역에서 만나서 다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신탄리역까지 가는 버스로 환승하기로 했다.
도착하면 점심시간이 될 듯 하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백마고지 전적지를 가보려 한다. 말로만 들었던 그 곳을 처음 가 보기로 했다. 왕복 네 시간을 예상하고 있고 백마고지에서 신탄리역으로 돌아오면 대광리역으로 가는 33번 버스를 타고 대광리역 근처에서 숙소를 찾아볼 작정이다.
지도상으로 보니 대광리역이 번화가인 듯하다. 어느 지역이든 시내는 있고 작더라도 있을 건 다 있는 곳이 시내더라는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다.
둘째 날은 경기둘레길 종주의 시작이다.
12코스 신탄리역 - 내산리 삼보쉼터 코스를 걸어서 완주한 후 삼각동 정류장에서 39-8번버스를 타고 연천역으로 나오기로 한다. 숙소와 먹거리가 마땅찮아서 차라리 차를 타고 시내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검색해보니 연천역 주변에는 모텔이나 여관이 좀 있다. 혼자라면 두렵겠지만 여행메이트가 있으니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일상을 유지하면서 짬짬이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신경 써야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즐거운 과제를 하는 기분으로 메모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며 지냈다. 그런데 모든게 수포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
여행메이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척추에 문제가 생겨서 걷기가 힘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병원 다녀보면서 경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했지만, 나는 포기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단념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여행을 위해 만나기로 했던 날의 만남은 진행하기로 했다. 만나서 가까운 곳에라도 잠시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서울역에서 만났다. 그리고 근처 가볼 만 한 곳을 찾다가 청와대 관람을 함께 하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수도권 지역 전체에 엄청난 양의 비가 왔다. 우산을 썼지만 옆으로 뿌리는 비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넘쳐나는 관람 인파로 인해 우리는 청와대 관람을 포기했다.
겉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삼청동에 맛집이라도 가보자고 검색해보고 걸음을 옮겼다.
경복궁 앞 종로 거리에서는 개천절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고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방에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온 관광객들이 수백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많은 인파가 비가 오는 관계로 식당으로 몰려들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가 보았지만 역시 많은 식당들이 만원이었다.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탈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먹을만한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아보았다. 퍼붇는 비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야 했던 상황이라 한적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겨우 찾아낸 곳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젖은 옷이 마를 시간을 갖고 쉬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의 여행을 기약하고서.
짧은 코스를 하루만 걸어보자고 했다. 걷다가 힘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교통이 편한 곳이면서 오고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곳을 찾아서 결정했다. 경기둘레길 20 코스를 먼저 경험해 보기로 했다. 일주일이 넘게 준비했던 정보는 하나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준비없는 여행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기대감을 가지고 떠나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