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서른한 번째 이야기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사인회에서 옛 동료 마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간다. 십여 년 만에 만난 그들은 옛이야기를 나누며 끊겼던 우정을 다시 키운다. 신약 처방에도 효과가 없자, 자신이 죽게 될 거라고 예감한 마사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안락사를 결정한다. 대신 죽을 때 옆방에 누군가 함께 하기를 원한다. 마사의 부탁을 받게 된 잉그리드는 고민하지만, 결국 그녀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뉴욕 근교의 숙소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그날’을 기다린다. 마사의 마지막에 대한 신호는 그녀가 자는 방의 문의 상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잉그리드는 매일 아침 그녀의 방문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이다.
이 영화의 강점은 단연코 화면을 꽉 채운 색감이다. 안락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화려했다. 환자인 마사는 환자복을 입지 않고 원색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강렬한 패션을 보여줬고, 그녀의 집도 여백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호화스러운 꽃과 과일, 액자가 실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잉그리드도 그녀 곁에서 초록과 빨강을 더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마사는 안락사를 앞두고도 노란색 정장에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며, 어두운 죽음보다는 밝은 축제의 색을 입고 생을 마쳤다. 죽음에 대항하는 마사의 방식이 오색찬란한 색상과 어우러져 묵중한 문제의식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병마에 지쳐 자칫 힘없이 흘러갈 수 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감독은 강렬한 색채의 힘을 불어넣었다. 더불어 그들이 함께 머무는 집에 걸려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실제 테라스의 선베드 구도가 요묘하게 닮아, 영화의 마지막을 그려볼 수 있는 힌트를 준다.
극 중 가장 큰 갈등 요소는 잉그리드가 마사의 요청을 수락하느냐이다. 그녀 입장이 되면 선뜻 허락하기 힘들 것 같다. 죽음은 남겨진 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 잉그리드가 딸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권했으나 거절한 이유도 자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마사의 딸은 아빠 없이 살았고, 자라는 동안 엄마도 곁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죽을 때가 다 되어 옆에 있어 달라고 한다면 가혹한 처사가 아닌지 딸의 입장에 서 본다. 마사도 이를 알고 친구들에게 부탁했으나, 몇 차례 거절당했다. 그리고 잉그리드의 차례가 왔다. 10년 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라면 사실 가깝다고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약간 떨어져서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데 적합한 관계일 수도 있다. 마사도 그래서 가족 대신 지인을 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사의 결정을 지지한다. 안락사가 현실에서 실행되기까지는 많은 규제와 제약들이 존재한다. 2002년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합법화했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을 느끼는 환자 대상으로 의사는 적극적인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다. 스위스는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마사는 스위스에 가는 대신 불법으로 다크웹에서 약물을 구하여 스스로 조력 사망 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능동적으로 생을 마무리한 것이다. 의학과 농업 기술의 발달로 영양상태가 좋아진 현대인들의 기대수명은 점점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 기준 연령을 만 65세로 정했던 1981년에 비해 기대수명이 15년 이상 증가했다. 노화를 방지할 수는 있으나 멈출 수 없다면, 건강하게 죽을 권리 또한 보장되어야 한다. 오래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죽음 또한 내가 초택할 수 있어야 동등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끝을 매듭지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