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서른세 번째 이야기
“어? 어디 갔지?”
제온은 호텔에 돌아온 직후, 안경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시력이 안 좋은 그녀는 안경을 써야 사물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정거리 10미터 안에 있어야 누군지 알아볼 수 있다. 상점 간판이나 벽에 걸린 가게 메뉴판은 당연히 못 본다. 한국도 아닌 낯선 곳에서 잘 안 보이면 맨눈인지 바로 인지해야 했는데, 피곤해서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세 시간 전 엄마와 함께 시드니에 도착했다. 야간 비행이어서 잠을 잘 수도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다 밤을 새웠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선재 업고 튀어》를 우연히 틀었다가, 뒤편이 궁금해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렇게 홀딱 밤을 새웠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무거운 몸과 캐리어를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웬만해서는 불평하지 않는 엄마도 피로가 쌓였는지, 그녀를 따라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기차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숙소가 나타났다. 일단 엄마와 로비 소파에 철퍼덕 앉아서 주변 상황을 살핀다. 그녀에게는 체크인이라는 중차대한 임무 수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서 얼른 이곳의 체크인 방법을 검색한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이곳은 우리나라 호텔리어도 상주한다고 한다.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니, 긴장을 풀고 프런트로 간다. 줄을 서서 프런트 뒤 직원을 빠르게 스캔한다.
‘맙소사, 전부 외국인이다.’
인터넷을 켜고 영어 표현을 찾는다. 그리고 조용히 소리 내본다. 그때다. “넥스트”가 들린다. 프런트에 도착한 그녀는 앞서 연습한 표현은 다 잊어버린 채, 빠르게 체크인하고 싶다고 단호하게 용건만 말한다. 직원은 그녀에게서 여권을 가져간 뒤 종이 한 장을 건넨다. 이곳에 서명하라고 말이다. 가뜩이나 경직된 그녀는 종이에 적힌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을 서명하라는 거지, 400달러! 나는 이미 결제를 했는데, 왜 또 돈을 내라는 거야.’
이상하게 흥분하자 그녀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온다. 물론 그녀 입장에서 유창한 것이지, 상대방이 잘 알아듣는지는 모르겠다.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묻는다. 직원은 보증금이라서 체크아웃하면 돌려준다고 답한다. 세 번쯤 확인한 그녀는 카드를 넘겨주고 다시 한번 하얀 종이를 정독한다.
‘환급해 준다고 쓰여있군. 이 종이는 잃어버리면 안 돼.’
잠시 후, 직원이 영수증과 이용 안내서를 전해준다. 더불어 아직 방 정비가 끝나지 않았으니, 완료되면 연락을 준다고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한다.
‘통화는 무리인데, 진짜 전화 오면 어떡하지?’
가지고 짐은 프런트에 맡긴 채, 또 다른 걱정을 안고 엄마에게 간다.
“엄마, 바로 방에 들어갈 수 없데요. 곧 점심인데, 뭐 좀 드실래요?”
“그럴까.”
“뭘 드시고 싶으세요? 스테이크, 햄버거, 피자, 스시?”
“스시 좋다.”
전화기에 발신 번호 호주 국가번호 61이 뜨면, 받는 대신 바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호텔 주변에 있는 초밥집을 검색한다. 마침, 5분 거리에 평점 좋은 식당이 눈에 띈다.
“엄마, 여기 어떠세요?”
“오! 좋아, 맛있겠다.”
엄마의 밝은 미소에 그녀는 만족하며 로비 정문을 나선다.
※ 연재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