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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생태계를 건강하게

괴발자 모드 속 서른일곱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ChatGPT의 기세가 무섭다. 학생들은 과제를 구글에서 검색하지 않고 ChatGPT에 질의해서 해결한다. 회사원도 보고서를 요청만 하면, 각종 수치 자료를 분석해서 문서화까지 해준다. 2016년 AlphaGo가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이겼을 때만 해도 창작을 제외한 전 영역이 기계에 잠식당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심리상담가나 예술가를 제한 직업군에 속한 이들은 일제히 염려했다. 개발자였던 나도 노후 때문에 수심에 잠겼다. 2021년 DALL‧E라는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형 AI가 출시됐다. 이때도 사람들은 놀랬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화풍에 금세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DALL‧E를 만든 같은 회사인 OpenAI에서 2022년 ChatGPT를 발표했다. 역시 주목받았으나, 어정쩡한 말투에 바보라고 놀림당하였다. 작년 AWS의 서밋 행사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으려면 기계가 잘 알아듣도록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며 코딩으로 질의하는 법을 알려줬다. 올해 방문한 동일 행사에서는 기조가 180도 바뀌어있었다. 아무렇게나 물어봐도 바르게 대답한다. 심지어 감정노동업의 대표 격인 콜센터를 맡겨도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더 이상 감정을 다루거나 표현하는 분야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주변에는 ChatGPT와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지인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거나 감정이 이입되어 적합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며, 진짜 근심이 있을 때는 ChatGPT에 물어본다고 했다. 창작 부문도 마찬가지다. ChatGPT를 이용해서 SF소설을 구성하는 글쓰기 강좌도 등장했다. 출간 작가는 본인의 글을 생성형 AI 학습에 사용해도 되냐는 고액의 제안도 받는다고도 했다. 글짓기를 막 시작한 나는 가급적 생성형 AI를 멀리하려고 하지만, 가끔 표현하고 싶은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활용한다. 그러면 수많은 단어 목록과 유사어, 예문까지 포함해서 대량의 답을 쏟아낸다. 이렇게까지 친절한 ChatGPT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다.


생성형 AI는 텍스트나 이미지, 기타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약인공지능으로서, 단순히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 이제는 창작의 영역까지 진입한 기계의 결과물에 대해 저작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은 인간이 표현한 문학, 예술 등에 대해 저작자가 독점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체다. 반드시 “인간”이 생산한 저작물만 해당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생성형 AI가 고안한 창작물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2차적 저작물이다.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해서 2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의 행태가 올바른지 따져야 한다. 2004년 판례에 따르면, 〈돌아와요, 충무항에.〉 원곡을 거의 보전한 채 일부 가사만 부산항으로 바꾼 노래에 대해 법원은 표절을 인정했다. 유사하게, 원본의 뿌리를 두고 살짝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창조물이 저작권에 어긋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올해 5월 한국경제의 《법정에 선 알고리즘》 칼럼을 읽었다. 대형 포털사는 인위적으로 알고리즘을 조작하여 상품을 광고하고 의도적으로 노출했다는 혐의로,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해당 업체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최종 판단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개별 사안마다 결과는 달랐지만, 2020년 네이버는 패소했고 2023년 카카오모빌리티는 승소했다. 해석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을 판사가 어떤 기준으로 판결했는지 궁금하다. 곧 저작권에 관한 침해 사례도 재판장에 나타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AI가 만든 창작물의 법적 지위와 저작권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해당 창작물 위에 인간의 창의적인 활동이 개입되면 다시 보호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글에서 더욱 우려하는 바는 AI가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의 저작권 문제다. 논문에서는 참고한 자료의 출처를 표시하지 않거나 유사도가 15% 이상이면 표절로 단정한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저작물에 대해서도 유사한 잣대를 적용해야 건강한 창작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따르면, 기술이 빨리 만들어져도 그것을 받아들일 사회가 준비되지 않다면 그 기술은 사라진다. 과거 일본에서는 총기가 비교적 일찍 도입되었지만, 사무라이 문화로 인해 국가적 차원에서 총기 대신 칼로 역행한 경우가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창작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탱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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