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두 시간 동안 쓴 글을 감쪽같이 날렸다. 평소에는 초고를 빨리 쓰고 되돌아와서 문장과 생각을 다듬기 시작한다. 날이 더워 집에서 초고를 쓰고 해가 저물면 카페로 이동해 매만질 계획이었다. 한 장소에서는 오랫동안 작문하기 힘들다. 황석영 작가는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고 했다. 아마추어인 나는 한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대신 자리를 옮기면서 글 짓는 시간을 연장한다. 특히 오늘은 쓸 글이 많아 집에서 최대한 머무르다 카페로 오려고 했었다. 올해 첫 에어컨을 켜고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려서 초고를 완성했다. 그리고선 새터에서 노트북을 켰다. 맙소사, 제목만 저장되어 있었다. A4 한 장이 온전히 날아갔다. 기술에 대한 글이어서 참고 자료도 많이 수록해 놨었는데, 깡그리 날아갔다. 글쓰기 여러 날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다. 너무 억울해서 친구에게 연락하니 이런 마음을 글로 남기라고 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쓴다. 분하다. 나의 두 시간이 완벽히 사라졌다. 아직 플롯이 어렴풋이 남아있기는 하나, 다시 쓰려니 까마득하다. 퇴고를 기억 속 문장에 의지한 채 진행한다.
퇴고(推敲)는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일이다. 우리말 중에는 고맙게도 한자가 있어, 한자를 잘 살피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고퇴(敲推)도 같은 뜻인데, 앞뒤 글자를 바꿔놓은 것이 왠지 퇴고의 활동과 비슷한 것 같아 신기하며 우습다. 글쓰기 초반에는 맞춤법 검사만 하면 퇴고가 수성되었다고 만족해했다. 어설픈 앎이 이렇게 무섭다. 기자 지망생이었던 동생은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내 글 중에 비문이 많다면서 말이다. 똑같은 글을 눈으로 보는 거랑 입으로 말하는 게 어떤 차이인지 몰랐지만, 준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무작정 원고를 읽었다. 한두 번 살필 때는 오타와 조사의 잘못된 쓰임이 보였다. 일곱여덟 번 읽으니 중복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열셋열네 번 보니까 빼도 될 것 같은 문장, 어구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오히려 문맥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서는 안 넣는 게 나았다. 《고종석의 문장》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이 최고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렇게 스무 번 넘게 읽는데도 쉴 새 없이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나왔다. 점심때 시작한 퇴고가 저녁을 먹고서도 끝나지 않았다. 그만 멈춰야겠다. 갈수록 내 글은 앙상해진다. 이렇게 계속 가지를 치면 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고차적인 퇴고를 시도해 본다. 완성된 글을 며칠이 지난 후 되처 가다듬었는데, 처음 썼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원래 구조가 탄탄한 글은 살만 붙이면 된다. 성질 급한 나는 항상 구조를 잡아야지 생각만 하지, 실상은 의식의 흐름대로 문장을 만들어 분량만 채운다. 어제부터 클레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서평을 쓰다 중단하기를 몇 차례, 일단 내가 쓰고 싶은 글부터 적는다. 그래서 소설가들이 잡문집을 출간하나 보다. 뇌리에는 써야 할 서평과 소설이 빼곡했지만, 머릿속 잡념을 없애야 다음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로써 나부터 달래고 나서 본업으로 돌아온다. 고퇴는 다양한 시점으로, 혹은 완전히 새롭게 쓰는 법이 있다. 사회적 문제의식이 모자란 나는 이런 종류의 작문을 할 때마다 어려움에 봉착한다. 저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거나 해석하는데 영 소질이 없다. 오히려 재능 있는 분야는 그대로의 상황을 순차적으로 묘사하거나 이상하고 특이하게 조망하는 영역이다. 숨겨진 이면을 찾는 문제는 수능 언어영역처럼 난해하다. 불평을 늘어놓다 보니 원래 글로 시선이 향한다. 오늘은 끝내보리라. 소설 속 주인공인 펄롱과의 재회는 여전히 무겁다. 이처럼 중차대한 것들을 휴일에 안고서 나는 계속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