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쉰다섯 번째 이야기, 거대한 전환 완결
《거대한 전환》을 끝냈다. 책장을 열고 덮기까지 두 달 걸렸다. 마지막으로 발문, 서문, 해제를 읽으면서 칼 폴라니의 생각이 얼마나 방대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본문만큼이나 후대 학자와 옮긴이의 해석도 장대했다. 특히, 옮긴이의 제목 풀이가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전환’의 영문 표기는 《Great transformation》이다. ‘transformation’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변형’, ‘great’까지 붙이면 문맥을 고려하여 ‘거대한 변태’ 또는 ‘거대한 환골탈태’가 적절했다. 그러나 번역자 홍기빈은 루이 뒤몽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보고 나서 용기 내어 현재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다. 번역만큼이나 제목도 붙이기 어려웠을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늘은 16장부터 끝까지, 1장과 2장을 정리하면서 거대한 전환의 마침표를 찍는다.
시장과 인간,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산 조직에 대한 시장 체제의 위협도 실질적이고 객관적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영리 기업조차 제한 없는 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을 피해 피난처를 찾아 나서야 했다. 시장 경제의 파괴가 급작스럽게 발현된 영역은 화폐다. 결국 금본위제의 실패로 시장 경제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1879년부터 1929년까지 반세기 동안 서양의 여러 나라는 밀도 있는 단위로 발전했다. 시장 메커니즘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진 시장 사회는 기능 부전이 발생하면 사회 전체에 긴장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강력한 붕괴 기운이 고조된다. 위기감을 느낀 유럽에서는 시장의 불완전한 자기조정 기능을 보완하고자 국가가 정치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개입 정도는 정치 영역의 구성이나 경제적 난관 수준에 따라 달랐다. 국제 차원에서도 세계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방식을 활용했다. 주목할 사실은 동시대 각국의 제도적 장치의 근저에는 획일성이 존재했고 발생 사건 또한 상당히 유사하게 대규모로 확산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제 금본위제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제도적으로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전체 붕괴의 위험은 절정에 이르렀다.
1920년대 마침내 국제 체제가 무너졌다. 초기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가 대두했으며 인민 정부가 대표적이었다. 사회주의 경제가 수립된 러시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가진 파시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본래 파시즘은 객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정치운동이지, 결단코 우발적 요인이 합쳐진 결과는 아니었다. 퇴행적 성격을 띤 파시즘은 1929년 이후 산업 사회의 문제에 관한 대안으로 여겨지면서 지지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의 위상도 변화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파시즘과 사회주의, 뉴딜의 체제 사이에는 자유방임의 원칙을 포기했다는 것 말고는 닮은 점이 전혀 없었다.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저자는 19세기 정치적‧경제적 여러 기원과 그것이 불러들인 거대한 전환을 다뤘다. 문명을 지탱한 주요 제도는 백 년 넘게 유럽 강대국 간 파괴적 전쟁을 막아선 세력 균형 체제, 국제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자유주의적 국가였다. 가장 큰 역할은 금본위제가 담당했으며 평화의 기초도 경제 조직이 좌지우지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해체했다. 국제 금본위제가 붕괴한 1930년대에는 문명 전체가 거대한 전환을 겪었다. 전대미문의 세계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19세기 주인공은 단연코 영국이었다. 산업혁명도 지극히 영국적인 사건이었고 시장 경제, 자유무역, 금본위제 또한 영국적 발명품이었다. 그렇지만 영국식 19세기 문명은 조직된 사회적 삶의 기본 요건과 시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세계 도처에서 이러한 제도를 와해하고 파시즘 체제로 돌리려는 시도가 자행되었다. 파시스트는 자유를 포기하고 권력을 사회 실재의 현실로서 찬양하지만, 사회주의자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찬양한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동료가 누릴 수 있는 풍족한 자유를 창조하는 과제 수행에 충실하다면 권력이나 계획 같은 도구가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복합사회에서 자유의 의미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이다.”
칼 폴라니의 문장으로서 번역 소감을 마무리하는 옮긴이의 글이 신선했다. 육백 장 넘게 설명하는 ‘자기조정 시장’이 적반하장처럼 다가왔다. 여러 달 머리 싸매고 이해하려 했던 분야가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니, 한 대 맞은 것 같아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지식을 되새기자, 오늘이 보였다. 시장 경제에서 자기조정 기능이 붕괴하고 보호무역이 극성을 부리는 20세기의 모습이 현재와 닮아있었다. 당시의 영국을 쫓다 보면 21세기 미국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그들의 정책과 정치조직이 나의 밥벌이에 강한 입김을 불어 넣고 있다. 증시가 흔들리고 회사 정책도 우왕좌왕한다. 따라서 세계 문명을 초토화한 장기적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국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 행보는 영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