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지방문

괴발자 모드 속 쉰여섯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권씨 집안 여사님들이 모였다. “그거 알지?” “그거?” “그래, 그거.” 신기하게 대화가 된다. 옆에서 듣는 나는 도통 모르겠다. 중간중간 이모에게 ‘그게’ 뭐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중단되면서 그들은 박장대소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식탁에 둘러앉아서도 알쏭달쏭 대화가 지속됐다. 옆에 앉은 사촌 동생을 보고 외쳤다.

“퀴즈!”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신기한 혈육의 언어다. 주어와 목적어 없이도 의사소통된다. 이렇게 시끌벅적해야 명절 기분이 난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맞는 두 번째 추석이다. 그와 함께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간간이 아빠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명절에 이모들이 오면 안방에 누워있다가도 거실을 들락날락하던 모습과 고모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던 표정 말이다. 처음에는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별은 다 그럴 것이다. 우연히 읽은 《애도 일기》에서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여의고 2년 동안의 일상을 적은 메모를 보면서 과거의 내 감정과 비교되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항상 태산이 무너질 때쯤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수능을 망쳤을 때, 회사에서 괴로울 때도 그랬다. 태산을 받칠만한 대들보를 찾고 나서는 한 단계 도움닫기 했다. 금번에 찾은 해법은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숙제로 일기 쓴 이후로 뭔가를 적어본 게 처음이었다. 다독하는 내게 감상평이라도 한 줄 두 줄 써보는 게 어떠냐는 친구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그런데 절박하니 글이 써졌다. 주인도 모르게 깊숙이 자리 잡았던 슬프고 외롭고 애통한 감정이 글을 통해 해소되었다. 반복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올 초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나 왜 이렇게 못 썼지.


긴 연휴 틈틈이 밀린 글짓기도 하고 공식 일정도 소화하려고 날씨를 확인했다. 간간이 비 예보가 있어 맑은 날을 서둘러 찜했다. 연휴 때마다 엄마와 영화를 보러 간다. 그녀는 코미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명절 효도 패키지의 일환으로 언제나 웃긴 영화를 본다. 이번에는 《보스》다. 그녀는 상영 내내 박장대소했고, 수영 남자 친구가 멋있다고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에 등장한 짜장면을 먹고 싶어 중국집을 검색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엄마 집 근처에서 먹어 본 짜장면 중 으뜸이었다. 엄마 입맛에도 최고라며 한턱낸다고 했다. 우리 집 보스가 유쾌했으니 올 추석 패키지도 성황리에 마쳤다.


《보스》를 보고 나니, 엄마와 그전에 본 《좀비딸》도 떠올랐다. 둘 다 코미디 영화면서 감동한 이유도 비슷했다. 《보스》에서는 등장인물인 나순태의 딸이 본인 때문에 학교에서 창피를 당하자, 조직 탈퇴를 결심한다. 당당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다. 《좀비딸》에서도 딸 방에 혼자 있는 이정환 앞에 딸이 환영으로 나타나서 “아빠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어?” 묻자 “기다릴게.”라고 답한다. 우리 아빠도 모든 선택을 할 때 두 딸이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그도 하고 싶은 게 많았을 텐데, 주변에 아빠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빠도 든든한 내 백이 돼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명품 백 하나가 사라졌다. 귀신 된 아빠가 얼른 새 가방을 채워 넣어야 한다. 못된 딸은 금방 또 아빠에게 요구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영원한 딸인 것을.

“이참에 신상으로 사주세요. 잘 생기고 성격 좋고 똑똑한데 제 말까지 다 들어주는 그런 백이요. 안 그럼 엄마가 먼저 여수 갈지도 몰라요.”

차례상 지방문은 고인의 이름을 포함한 정보를 위패 대신 종이에 쓰는 글이다. 철들지 않는 딸이 올리는 올해 지방문이다. 들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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