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예순세 번째 이야기
처음에는 체스 챔피언 미르코 첸토비치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극이 전개되면서 흐름은 B 박사로 넘어간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소설은 체스 경기에 대한 긴장감으로 꽉 차 있다. 미르코는 열네 살에 우연히 헌병대 상사와 두기 시작한 시합을 계기로 열여덟 살에 헝가리 챔피언전에서 이겼고 스무 살에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초반부에 이미 세계 최고에 등극하면서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그의 실패를 예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선상 시합에서 아마추어팀에 패했다. 이 팀의 승리를 안겨준 인물이 B 박사다. 이제 저자는 B 박사가 어떻게 체스에 빠져들었는지를 풀어놓는다. 이십오 년 전 이래 체스보드 앞에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었던 그는 나치스에 의해 독방에 장기간 감금당했다. 완벽한 고립의 고문 방법으로 말이다. 공교로이 체스 교습서를 훔치면서 공상의 체스에 빠져 고독을 극복하긴 했으나, 이내 중독 증상을 보였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이야기는 첸토비치와의 정면승부에서 B 박사의 체스 중독증이 재발하려는 찰나, 게임 중단을 선언하면서 끝을 맺는다.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어리숙하게 등장한 첸토비치는 과연 체스 말고 다 모르는 사람이 맞았을까. B 박사가 첫 시합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첸토비치는 이후 게임에서 상대방을 완벽히 간파하고 전략적인 심리전을 펼쳤다. 게임 시작할 당시만 하더라도 평온한 B 박사를 상대로 불안을 조장하는 첸토비치야말로 진정한 전술가이며 동시에 생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인물이지 않을까. 그는 상대방의 기권 덕분에 두 번 연속 패에서 멈췄다. 결과만 놓고 보면 승부에서 진 이는 첸토비치지만, 내게는 결코 B 박사가 승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독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스를 활용하면서 두 번이나 자제력을 상실했다. 처음에는 운 좋게 석방으로 이어졌으나, 결국 만인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경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지독한 고문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며 그중에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 있음이 자명했다. 오스트리아 변호사로서 법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그의 일상이 한순간의 경기로 완벽히 무너졌다.
비슷한 전개를 한국 소설에서 찾았다. 장류진 작가의 《연수》다. 초보운전자 주연이 50대 아주머니 선생님에게 운전 연수를 받으며 홀로서기하는 과정을 그렸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체스로 긴장을 고조하듯이 장 작가도 도로 주행 과정을 초조하게 마음 졸이며 보도록 만들었다. 주연이 좌회전하는 도중 뒤차로부터 날카로운 경적을 받거나 옆 차선을 파고들 때는 내가 운전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두 소설은 다르다. 《체스 이야기》에서는 B 박사가 고독에서 빠져나오려고 몰입한 체스에서 일순간 자제력을 잃었던 반면, 《연수》의 주연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운전 공포에서 벗어났다. B 박사는 홀로 방법을 터득하면서 위기가 있었으나, 주연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운전하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스스로 고립될 수도 있고 함께 자립할 수도 있다. 특히, 《연수》의 선생님처럼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하는 이가 있다면 고립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립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희망을 읽었다. 이 세상의 다른 B 박사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어두운 글을 읽어도 어떻게 해서든 긍정의 메시지를 찾으려는 나의 고질적인 습관이 답답하면서도 바꿀 수 없어 체념했다. 모든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유전자 소행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극에 한발 더 나아가고자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체스 이야기》는 인간의 고독을 기준으로 선과 악에 대한 본질적인 대립을 다뤘다. 《연수》는 불신에서 시작한 주연의 마음이 선생님에 대한 믿음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골칫거리를 덜어내거나 이상향에 대한 속풀이 정도로 생각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나 장류진 작가의 글도 인간의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지 않을까. 읽는 사람 마음이지만, 정답을 알 수 없어 자꾸만 서평이 물음으로 끝난다. 그의 20세기에도 그녀의 21세기에도 인간의 고립은 여전한 난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