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예순네 번째 이야기, 거대한 전환 이후 2부
《거대한 전환》을 끝냈다. 책장을 열고 덮기까지 두 달 걸렸다. 본문만큼이나 후대 학자와 옮긴이의 해석도 장대했는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옮긴이의 제목 풀이다. ‘거대한 전환’의 영문 표기는 《Great transformation》이다. ‘transformation’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변형’, ‘great’까지 붙이면 ‘거대한 변태’ 또는 ‘거대한 환골탈태’가 적절했다. 그러나 번역자 홍기빈은 루이 뒤몽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보고 용기 내어 현재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다. 번역만큼이나 제목도 붙이기 어려웠을 그의 심정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거대한 전환》을 통해 총 세 편의 서평을 남기고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꼬리 책까지 읽었다. 평생 관심 없었던 자본주의에 대해 작게나마 사유하게 해 준 책에 감사를 표시하며 한 번 더 소회를 정리하였다.
두 책을 통틀어 인상적인 키워드는 영국, 금본위제, 자본주의의 지정학적 이동이다. 앞에 두 단어는 《거대한 전환》에서 마지막은 꼬리 책에서 가져왔다. 19세기 주인공은 단연코 영국이었다. 산업혁명도 지극히 영국적인 사건이었고 시장 경제, 자유무역, 금본위제 또한 그의 발명품이었다. 문명을 지탱한 주요 제도는 백 년 넘게 유럽 강대국 간 파괴적 전쟁을 막아선 세력 균형 체제, 국제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자유주의적 국가다. 그중 금본위제의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평화의 기초도 경제 조직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결국 시장 간 갈등으로 인해 영국식 19세기 문명은 파괴되고 1930년대에는 국제 금본위제까지 붕괴해서 문명 전체가 거대한 전환에 휩쓸리게 되었다. 세계 경제는 해체되고 영국도 초강대국의 자리를 미국에 내주게 되었다. 전대미문의 세계 전쟁 발발도 우연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지역적으로 불균형하게 성장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로 공간적 해결이 진행되면서 자본의 복리 성장 논리가 지정학적으로 구현되었다. “중국의 미래가 자본주의의 미래인가?”라고 할 만큼 중국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 벌어졌던 일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되풀이됨이 자명하다. 이미 칼 폴라니가 언급했듯이 세계의 역사는 공동으로 합의된 의도 없이도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자본의 흐름을 겪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행보는 내가 막거나 거스를 수도 없다. 다만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항시 현상에 대해 사유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사 먹는 커피 한잔이 지구 반대편의 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내가 자본을 소비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확보할지언정, 타인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조장할 수도 있다. 두 저자를 통해 현실의 자본주의를 대하는 태도를 갖춰나간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전혀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이다.”
칼 폴라니의 문장으로서 번역 소감을 마무리하는 옮긴이의 글이 신선했다. 육백 장 넘게 구구절절 설명하던 ‘자기조정 시장’이 결론에 이르러서 아이러니했다. 여러 달 머리 싸매고 이해하려 했던 분야가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니, 한 대 맞은 듯 허탈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지식을 되새기면서 오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경제에서 자기조정 기능이 붕괴하고 보호무역이 극성을 부리는 20세기의 모습이 현재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당시의 영국을 쫓다 보면 21세기 미국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들의 정책과 정치조직이 내 삶에 강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증시가 흔들리고 나의 밥벌이 수단이 회사 정책도 우왕좌왕한다. 해결할 힘이 없는 내게 작은 예측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백 년 전 영국의 행보에서 단서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