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예순다섯 번째 이야기
엄마 집에 가려면 전철역에 내린 후 한참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 길을 밟으며 마주치는 생명체를 보고 있노라면 내 생각도 같이 요동친다. 오늘은 그렇게 만난 군집에 관한 관찰기다.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인간부터 논해본다. 차족과 보행족, 근래 등장한 신인종으로 나뉜다. 태초에 신은 공평하게 차족에게는 차도, 보행족에게는 인도를 하사했다. 차도가 두세 배 이상 넓으니,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여기 인도에 자전거족과 킥보드족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보행족을 향해 질주하다 경적을 발사하는 자전거족도 있다. 이때 자신의 행로를 고집하는 보행족은 욕먹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갈수록 보행족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횡단보도는 오토바이족과 나눠 쓴 지 오래다. 얼마 안 남은 인도마저 자전거족, 킥보드족과 함께해야 한다니 씁쓸하다. 부익부 빈익빈,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은 성경 마태복음에서 차용해서 이를 ‘마태 효과’라 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보행족은 있던 것마저 뺏기게 생겼다.
도서관을 다녀오다 한적한 길가에서 총총 뛰는 까치를 만났다. 날지 않을 때 까치는 엇박자로 움직인다. 쫓아오는 이도 없는 까치의 이상한 걸음걸이가 정박으로 못 걸어서인지, 급한 성격 탓인지 알 수 없다. 며칠 전, ChatGPT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다. 기계가 이해하도록 질문해야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어서라 했다. 이왕이면 그 기계가 동물의 말도 통역할 수준까지 발전했으면 한다. 그러면 물어볼 상대가 많다. 당장 까치와 호주에 있는 견조카 시루에게 묻고 싶다. 널찍한 거실 다 놔두고 좁디좁은 소파 틈새에 껴서 자는지, 고양이 자세 같은 요가 동작은 왜 하는지, 도그 파크만 가면 왈라비 똥을 묻히고 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ChatGPT가 우리 삶에 갑자기 파고든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그날이 올지 모르니 동물과의 대화도 준비해야겠다.
빗줄기가 지나간 후 날이 쨍해지면 길가에 지렁이 사체가 즐비하다. 사실 지렁이보다 우글거리는 개미 때문에 눈길이 더 간다. 예전 같으면 혼비백산했겠지만,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돌아간다. 개미보다 몇 배 큰 지렁이가 개미군단에 함락당했다. 지렁이가 죽어서 개미가 몰려든 것인지, 개미 떼가 지렁이 한 마리를 몰살시킨 것인지 알 수 없다. 앞서 말한 기술의 발달로 개미 말은 들어볼 기회라도 있겠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항상 산자에 의해 쓰인다. 망자의 말을 전달하는 과학기술도 필요하다. 그래야 공평하다. 덕분에 아빠 말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철이면 청각을 장악해 버리는 매미 군집도 빼먹을 수 없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살다가 위로 올라와 기껏 2, 3주를 살고 생을 마감한다. 수컷이 시끄럽게 우는 이유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수컷은 몸 안이 진공관과 공명실로 이뤄졌을 만큼 소리에 진심이다. 그렇게 짝을 만나면 암컷 매미는 나무껍질에 알을 낳고 세상을 떠난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집에서는 창문 닫고 에어컨으로 버텼는데, 길거리에는 방음벽이 없어 참고 걸어야 한다. 오늘따라 매미 소리가 불쌍히 들렸다. 소란스럽다고 구박할 게 아니다. 회사에서도 종일 말하는 이를 만나면 매미라고 생각해야겠다. 분명 절실한 사연이 있을 게다.
※ 안내: 앞서 발행한 〈경사진 그들의 사연〉을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