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와 강박의 포위

괴발자 모드 속 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 3부

by 돌뭉치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자로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과 주체성, 기표인 언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환자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해서 실수하고 이를 통해 무의식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드는 치료법이다. 사무실에서 다변가 때문에 고통받는 내게 이점은 꽤 흥미로웠다. 김서영 교수가 강연한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는 〈도둑맞은 편지〉를 예시로 라캉의 중심 이론을 설명한다. 도둑맞은 편지를 중심으로 왕비, D.장관, 경찰, 뒤팽까지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편지에 관해 설명하면서 결국 아무도 소유하지 못한 대상a로 마침표를 찍는다. 대상a는 결여의 다른 말이자 실제의 한 조각이며 동시에 문자이고 편지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잡을 수 없다. 비슷한 예가 백상현 저자의 《고독의 매뉴얼》에도 나온다. 2년 전부터 거식증을 앓아온 여인은 분석가를 찾아와 상담했다. 그는 라캉처럼 여인에게 장황하게 말을 꺼내 놓아 무의식의 저편을 들여다보게 했다. 일 년 동안 지속되는 치료에도 그녀의 거식증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실질적, 병리적인 도움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세상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흐르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분석가는 질문에 답변을 피하면서 그녀 스스로 사유하게 했으니 목표는 달성했다.


동일한 흐름을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도 발견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었다. ‘떡볶이’가 가지는 발랄함 때문에 재미있는 에세이로 생각하고 책을 펼쳤으나, 완전히 틀렸다. 1년 넘게 내원한 정신의학과의 치료기록이 담겨있었다. 자크 라캉이 환자에게 질문하면서 본인 스스로 깨닫게 만든 것처럼 백작가의 담당의도 끊임없이 물었다. 그녀는 남들의 별 뜻 없는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 원인을 본인이 만만하다고 생각할 때나 주변에서 관심이나 외모 칭찬을 받지 못할 때 괴로워했다. 그녀와 비슷한 면이 내게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체구가 작고 순해 보이는 인상 탓에 부당한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카리스마 없는 내 탓을 했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서도 주목받기를 원했다. 그 의사는 이 증상을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라고 했다. 어디서든 본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증세라고 한다. 라캉도 히스테리와 강박에 대해 언급했다. 히스테리는 타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타자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백작가나 나처럼 보이는 면을 중요시해서 타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한다. 반면, 강박은 타자의 욕망이 자신에게 닿는 것을 두려워해서 결단하지 않는 대신 끊임없이 욕망을 미루고 지연시킨다.


백 작가의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서 어느 정도의 히스테리와 본인의 강박에 묶여 산다. 당장 지금도 이 글이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조금 덜 나를 드러내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박 관점에서도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까 봐 여러 번 책을 들춰보고 인터넷에서 재검색했다. 그럼에도 단정 짓기보다 ‘같았다’는 표현으로 에둘러서 결론을 미뤘다. 라캉이 주창하는 ‘상상계, 상징계, 실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어 두루뭉술하게 적기로 했다. 상상계는 거울에 통해 볼 수 있는 나의 이미지이고 상징계는 그렇게 확보한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해 보편화한다. 내가 라캉을 접한 이 순간이 상상계이고 이 정도면 알았다고 확신하는 찰나가 상징계, 문자로써 표현하면서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라캉의 세계라 실제인 듯 연결해 보았다. 자크 라캉과 백세희 작가, 다른 시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살았음에도 그의 주장을 그녀 책 속에 풀어놓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그럼에도 정식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나는 ‘실제’에 허우적거리고 있어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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