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감자튀김

괴발자 모드 속 예순두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올해 본 영화 중에 제일 이상한데, 재밌다. 많은 평론가가 미사여구를 동원해 기깔나는 감상평을 남기는데, 나는 “이상한데, 재미있다.”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처음 포스터만 봤을 때는 납치된 딸을 찾으러 가는 아빠의 부성애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 연휴 영화로서 과감히 포기했다. 부모가 자식을 구하는 영화는 안 봐도 결말이 뻔했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친구가 꼭 보라고 했다.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거라면서 말이다. 잔인하고 복잡한 내용은 즐기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시간 맞는 영화가 없어 친구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다.


시작은 미국의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시사톤의 냄새를 풍긴다. 중반 이후까지 불법 이민자 이야기를 다루므로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혁명가의 막 나가는 행동이 포착된다. 은행을 털다 경비원을 사살하고 결국 붙잡혀서 동지의 정보를 발설하는 배신의 행위에 이른다. 여기까지 보면 그들이 말하는 혁명도 별거 아니냐고 의심하게 만든다. 앞서 정부를 비판하던 시위대의 혁명 동기가 별거 없음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지의 배반으로 쫓기게 된 주인공 아버지와 딸은 16년 후 재등장하는데, 극 중 인물 밥은 늙고 윌라만 성장했다. 나이 든 그에게 과거의 혁명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특히, 경찰에 추적을 당하면서 밥이 일삼는 행동이 꽤 우스웠다. 젊은이들과 비교해 제대로 뛰지 못해 옥상에서 추락하고 조직의 암호를 잊어버려 딸이 은신처를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이민자를 돕는 가라테 스승 세르지오까지 밥이 조직원과의 통화할 때 시간을 대라는 급박한 암호성 질문에 “8시 15분”이라고 대신 대답하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웃음을 꺾어버린다.


혁명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추구하는 바가 대의를 위한 것인지, 내가 돋보이려는 의도는 없는지는 돌이켜보게 한다. 평생을 진리라고 쫓았던 가치도 저버리게 만드는 가족애에 관해서도 헤아리게 했다. 우리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고 내 반찬을 가져다줘야 하는 날이 오면 친구 약속은 취소해도 우리 집에는 온다. 극 중에서는 부모가 자식, 남매간 사랑이 모두 나타나지만, 자식도 없고 촌각을 다투는 위기에 처한 적도 없는 나는 100% 그 사랑을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영화는 또한 이민자 실태와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미국의 불편한 현실을 관망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회 비판 영화는 복잡하고 우울한 코드가 많아 볼수록 감정이 가라앉고 끝난 후에도 께름칙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잔 펀치를 계속 날리면서도 웃겨준다. 특별히 전투 장면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폭력의 무차별성을 예술로 승화한 것처럼 황홀하다. 마지막 자동차 추격 장면도 가관이다. 양옆의 사막을 낀 능선 같은 대로에 차 두 대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참 동안 화면에 차 배기 소리만 들린다. 사막의 열기에 타는 듯이 구불거리면서 초점을 잃은 영상을 조금 더 보고 있노라면 내가 차에 탄 듯 멀미할 것만 같았다. 왜 친구가 IMAX로 보라고 추천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서야 이해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지점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조직명은 프렌치75다. 왜 감자튀김 같은 이름으로 지었는지, 이 또한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 궁금했다. 1970년대 프랑스 혁명 당시 무기 이름이라 했다. 영화가 가지는 무거운 요소를 그대로 담지 않고 해학적으로 풀어낸 대단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이다. 극장에서 안 봤더라면 무척 아쉬울 뻔했다. 올해 본 브래드 피트의 《F1》도 레이스 장면과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영화관 관람을 추천했는데, 이 영화가 더 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그 속에 이야기도 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쓰려는데도 좋다는 표현만 거듭 강조하는 걸 보면 단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지점이 무수히 존재한다. 혁명도 마침표 없이 늘어지게 되면 퇴색해서 원래의 동기를 찾지 못하고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인다. 단기 목표의 중요성, 웃기지만 내가 발견한 메시지다. 이상한데 재미있는 영화다. 꼭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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