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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펄롱들

괴발자 모드 속 스물한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빌 펄롱은 아내 아일린, 다섯 딸과 함께 산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집주인 윌슨 부인의 배려로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덕에 기술을 배우고 석탄 상인으로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으로 배달을 가서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나는데, 나쁜 일을 당한 듯 보였지만 외면한다. 그렇게 며칠 동안 괴로워하다 자신의 성장기를 떠올리며 수녀원으로 돌아가서 소녀, 세라를 데리고 나온다.


클레어 키건 작가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이다. 전혀 사소하지 않은 사건들을 풀어내며 독자가 반문하게 한다. 펄롱과 세라의 만남,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네드 아저씨와의 관계 묘사가 대표적이다. 인물의 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힘을 썼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라의 어려움을 회피했을 때 집안 풍경을 그렸다. “뜻 모를 무늬가 반복되는 벽지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불안정한 그의 내면을 갈음했다. 네드 아저씨 집을 방문해서 타인으로부터 둘이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닮았다는 말을 곱씹어 보며 생각 속에서 불을 지폈다.”가 전부이다. 함구함으로써 그의 감정이 평온해졌는지 저자에게 반질하게 한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 있다. 주인공이 크게 동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 점이 되레 읽는 이가 흥분하게 만든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가 괜찮아 보였으나, 재독째는 글쓴이가 작품 곳곳에 번뇌하는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상황 묘사 장치가 눈에 띄었다. 이타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누구나 갈등하지만, 대부분 본인을 위해 결정을 한다. 그래서 펄롱이 처음 세라를 보고도 모른 척했을 때 이해되었다. 그의 선택을 걱정하는 아내나 식당 주인 케호가 있어 극의 현실감을 살렸다. 내가 그들 처지가 되더라도 응원은 못 했을 것 같다. 특히, 아내 입장이라면 더욱 아이들의 학업과 미래를 위해 수도원과 척져서는 안 된다고 남편을 설득할 것이다.


작가는 가족 전체의 생활을 뒤흔드는 그의 결정에 대해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세라가 합류한 이후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 알려주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대신 이렇게 역설적인 제목을 던지면서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아마도 자녀들은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이고 경제활동도 어려워지리라. 사회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이더라도, 자녀로서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 있다. 앞서 내가 그의 아내가, 이제는 딸이 되어보니 그의 결정에 대한 저항감이 점점 세진다. 공익과 사익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판정의 한가운데서 갈등한다.


삶은 뚜렷함보다는 모호한 것 천지다. 우리는 그 속에서 매번 고민한다. 그 판단이 최선인지도 당장은 알 수 없다. 나는 펄롱과 같은 결단을 끝내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가지 않은 길이어서 오히려 지지하게 만든다. 내가 못 하는 일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922년부터 1996년까지 약 74년간 가톨릭 수녀회가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한 곳이다. 사회적 약자인 성폭행 피해자나 고아 소녀들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부당한 노동을 강요했다. 2002년 피터 뮬란 감독의 《막달레나 시스터》가 개봉하면서 그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부 단체와 사람들이 사과했다는 후기를 보면, 늦게라도 그의 결정이 옳았음이 증명되어 다행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펄롱들 덕분에 이 세상은 점점 나아진다. 가해자 전부가 자성하는 그날까지 펄롱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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