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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인터내셔널

괴발자 모드 속 스무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같은 중학교를 나온 진주와 니콜라이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편히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각자의 방식으로 악착같이 버티며 미래를 준비했다. 소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대형 마트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했고, 소년은 영주권 취득 비용을 모으고자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근무했다. 둘은 우연한 기회에 밥을 먹고 잦은 만남이 계속되면서 친한 사이로써 같이 살게 된다. 저자는 10대 시절부터 20대 중후반까지 그들의 일상을 비추면서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고 반문하게 한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현실이 애처롭기만 하다. 영상으로 보았던 노동자의 불우한 환경을 글로 재현한 것 같아 읽을수록 암울했다. 가장 빛이 날 청춘에게 이렇게 끝도 없이 불행의 기운을 씌우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래서 제목에 포함된 ‘인터내셔널’을 검색해 보았다. 인터내셔널은 국제노동자협회이고, 두 사람이 이사할 때 듣는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의 해방과 사회적 평등을 담은 민중가요이다. 인터내셔널을 국제적이라고 해석한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리 없었다. 새롭게 해설한 ‘인터내셔널’은 두 사람의 관계부터 재정의했다. 이들은 연인 관계가 아닌 일련의 노동자 조직이고, 동거를 통해 내부 결속을 공고히 하려 했다. 인터내셔널가의 제창도 그러한 단결 활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일꾼 한 명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기득권 세력으로 대표되는 사업주 1명과 대적하기도 벅차다. 그래서 세상은 부조리가 반복된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조금의 변화도 만들 수 없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오기 전까지 KBS 9시 뉴스에서는 매일 안전한 일터를 만든다는 구호 아래 전국 현장을 취재하였다. 방송이 나갈 때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었고, 올해 3월 25일에도 제철소에서 20대 청년이 사망했다. 진주, 니콜라이와 같은 또래이다.


나는 그들에 비해 사회적 지위를 가진 기성세대지만, 아직 해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사회의 모순을 제거할 수 있다는 데는 뜻이 같다. 최소한 젊은이들이 꿈을 접지 않도록, 오래 걸려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도록 공감하고 눈높이를 맞춰 보려고 한다. 그래야 두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터내셔널로 넓혀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진주와 니콜라이의 마지막 질문에, 잘못된 것은 너희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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