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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의 그린 라이트

괴발자 모드 속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 두 명의 남자가 남부 순회공연을 위한 투어를 시작한다. 그들은 연주자와 운전사의 역할로서 8주 동안 함께다. 이들의 동행이 특별한 이유는 각자의 피부색과 직업 때문이다. 백인 기사가 흑인 연주자를 위해 운전하는 모습은 영화 속 주변 인물들과 극 밖에서 지켜보는 나에게 모두 낯설다. 유색인종만을 위한 숙박시설, 오직 흑인 대상 심야 통행금지, 음악회의 주인공인 연주자조차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과 식당 등 1960년대 인종차별이 성행한 시대의 모습을 영화는 신랄하게 그렸다. 흑인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을 가졌던 토니는 돈 셜리의 여행 기간 그의 연주를 듣고 대화를 나누며 점점 편견에서 벗어나 우정을 키운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이다.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은 줄임말로써, 실존했던 흑인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이다. 영화 초반에는 이 책자의 쓰임을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이 없던 시절 여행을 위한 안내서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책의 역할은 기대 이상이었다. 1960년대 그린 북 없이 흑인이 남부를 이동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주에서 마지막 노예제도가 끝난 지 백 년이 흘렀음에도 유색인종을 향한 적대감이 만연했다. 동부에서는 카네기홀 꼭대기 층에서 왕처럼 사는 돈 셜리지만, 남부에서는 허름한 여관에서 묵어야 한다. 그린 북에서 알려준 장소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숙소다. 음식점, 양복점에서도 차별은 존재했고, 그들 자신도 이러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한 번은 차가 고장 나서 농장 옆 길가에 멈춰 서서 토니는 수리하고 돈 셜리는 차 밖에 서서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이때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과 돈 셜리가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사는 없었음에도 그들의 눈빛이 많은 것을 말했다. 백인의 고용주가 된 흑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돈 셜리를 감싸면서, 그의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흑인 스스로도 차등의 울타리를 씌우고 그 속에 갇혀 사는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 작가의 《총 균 쇠》에서는 열강이 식민지를 지배하게 이유를 특정 인종에 대한 유전적 차이가 아니라 지리적‧환경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 문명이 빠르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동이 필요하다. 경도로 이전할 때는 기후 및 자연환경이 달라서 빠른 전이가 어렵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긴 지형이어서 유럽에 비해 농업과 문화 전파가 어려운 여건을 가졌다. 반면 유럽은 동서로 장대하여 강대국이 되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췄다. 기술이 전파되기에도 유리한 지형이므로 이주한 백인들이 선진 무기를 이용해서 원주민 혹은 흑인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었다. 생물학적 우위에 대한 근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과거를 고칠 수는 없다. 현재도 인종을 구별 짓는 행위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난다. 미국의 정부 수반도 인종차별적 발언과 행정명령을 서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독이 주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돈 셜리 박사가 분명 동부에서 편하게 대접받으며 연주할 수 있었음에도 남부를 택한 이유가 있다. 비슷한 토니의 질문에 연주팀 트리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왜냐면 천재성만으로는 부족하거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 돈 셜리는 앞에 놓인 장애물을 깨부수며 사회를 바꿔나가려는 용력을 발휘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린 북은 폐간되었고,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는 요즘도 미국 전역에서 열린다. 평소에 인종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자부했었지만, 전철에서 동남아시아인이 옆에 앉으면 자리를 옮길지 고민하던 나를 발견하고 생각이 멈췄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격차는 없다. 지금은 사라진 그린 북이 인류 평등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깨우는 그린 라이트가 되길 바란다. 우리 전부는 존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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