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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연루된 족쇄

괴발자 모드 속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조형근 작가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에 걸쳐 전쟁과 관련된 소재를 무덤덤하게 풀고 있다. 가령 일제 치하 자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의사들의 행보가 글쓴이에 따라 감정적으로 그려질 수 있음에도, 최대한 사실 위주로 쓰인 것 같아 독자로서 거부감이 덜어내진다. 우리 민족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종종 책장을 넘기기 힘든 때가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중국과 같은 이웃 식민지와 제2차 세계대전 유럽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 전쟁의 실상을 다방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또한 일반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건의 내막과 인물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어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도 많다. 총 열여덟 개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전개되는데, 내가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포로 감시원과 사할린 한인 이야기다. 두 인물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았지만 삶의 아픔은 묘하게 닮아있었다.


표제작인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이다. 일본군 전쟁 물자 수송을 위해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도 건설에 연합군 포로들이 동원되었고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이 조선인에게 주어졌다. 감시원 중에는 본인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도 있었고, 소극적으로 임무를 다한 이도 있었다. 이들은 전범재판소에 서게 되는데, 형이 내려질 때는 일본인으로서 대우받는다. 그런데 불합리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는 조선인으로서 천대받는다. 포로 감시원으로서 악행을 옹호하는 뜻은 절대 아니지만 그들의 일본인 상관 다수가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는 사실에서 불공정을 마주했다. 전쟁 중에는 생구를 때리지 않으면 그들이 맞고 전쟁 후에는 상관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그들이 생애가 쓰리다. 일본의 만행에 연좌되어 끊기지 않는 사슬을 차고 있었다.


포로 감시원과 비슷한 아픔을 주는 글은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귀국하지 못했던 한인들이다. 전쟁이 끝난 후 집단 귀환은 전범 국민인 일본인부터 진행되었다. 해방 당시까지는 법적으로 일본인이었으나 조선에 호적을 졌던 조선인은 귀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한국 정부도 오래도록 이들을 방치했다. 소련과의 수교가 이뤄진 1990년, 해방되고 45년이 지나서야 모국과 연결될 기회를 가졌다. 1992년이 되어서야 영주 귀국 사업이 추진되면서 전국 각지에 집단 거주지가 조성되었다. 포로 감시원처럼 이들도 일본인과 조선인 신분이 뒤바뀌며 귀향하지 못했다. 그들의 일생에 무거운 쇠사슬을 채웠다. 이 쇠줄은 양국에서 후손이 받는 조국에 관한 질문으로 연결되었다. 해방 이전에 사할린에서 태어난 이들은 부모의 고향이 있는 한국을 모국으로 여기지만 3·4세대는 러시아가 본국이라고 답변했다. 국적이 뭐가 중요한가, 21세기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역사에 연루되어 상처받고 있다.


포로 감시원과 사할린 한인 모두 해방 전후 똑같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았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민다. 그들에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본인의 자율 의지 없이 그 일을 해야 했고 그곳으로 내몰렸다. 작가가 단 부제처럼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족쇄처럼 채워졌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복권의 의미가 옅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휴일에 더 큰 의의를 둔다. 역사를 기억해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억울한 가해자와 정체성을 잃은 국민도 만들지 않는다. 오늘 소개한 두 집단 중 계속 궤적을 남길 이는 사할린 한인이다. 시대적 난민으로서 자손을 통해 계속 형계를 찰 그들에게, 최소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대하고 묻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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