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완성하는 미래

by 시준아빠

여의도 평범한 17층 건물 사무실.

3층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들은 종종 멈칫하곤 했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도서관이자 작업실, 상담소이자 작가의 방 같았다.


공간 한 켠엔 ‘제이 투자연구소’라는 작은 금속 간판이 조용히 걸려 있었다.

유제이는 이곳을 ‘연구소’라 부르지 않았다.

사람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인생을 설계해보는 ‘작업실’ 같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유제이는 오늘도 오전 10시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퇴직까지 16년 남았는데, 요즘은 이 길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어요.”

“학생들한텐 인생을 그리라고 하면서, 정작 저는 멈춰 있네요.”


유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퇴직 후 뭘 하실지 가끔 생각해보셨나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혼자 전시도 열어보고 싶고, 책도 써보고 싶고…”


유제이는 화이트보드에 ‘예술, 교육, 회복’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1단계(정체성과 감정 정리) → 2단계(회복과 실험) →

3단계(전환 계획) → 4단계(지속 가능한 수익 설계)


유제이는 그 사람이 어디에서부터 삶의 방향을

다시 그릴 수 있을지 조용히 짚어가고 있었다.

교사가 품은 꿈이 막연한 상상에 머물지 않도록,

작지만 지속 가능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무실에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유제이는 직접 내린 드립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의도 주변 사람들, 건물들, 한강이 봄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일상이, 내가 꿈꾸던 자유였구나.’


그는 책상 위 작은 액자를 바라봤다.

사진 속엔 자신이 설립한 재단의 첫 장학 수혜자였던 소년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소년은 지금 베트남에서 온라인 수공예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날 오후엔 영상 미팅이 예정돼 있었다.


이번엔 캄보디아 교육 NGO와 협업 중인 프로젝트 리뷰였다.


“이번엔 15세 아이들이 태블릿으로 실전 창업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로고를 만들고, 이름도 짓고, 작은 지역 브랜드를 시도했죠.”

유제이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 아이들, 처음엔 컴퓨터도 못 다루지 않았나요?”

“그렇죠. 그런데 스스로 해냈어요. ‘나도 뭔가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겼어요.”


그는 침묵 속에 미소 지었다.

가장 강력한 자산은 ‘자기 삶을 믿게 되는 감각’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저녁

모두 다 퇴근한 사무실, 유제이는 소파에 앉아 옛날에 쓰던 태블릿을 켰다.

거기엔 아직도 그가 퇴사를 고민하던 시절, 혼자 써내려간 글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왜 자유를 원했는가.”

“나는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가.”


그 글을 다시 읽으며, 유제이는 지금 자신의 하루를 떠올렸다.

글을 쓰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가치를 전하고,

청소년들과 함께 미래를 상상하고, 진짜 돈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는 일.

그는 이 일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삶의 연장이자, 오래된 꿈의 구현이었다.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 핸드폰에 여미행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인터뷰 잘 끝났어. 다음 달에 재단 다큐 시작한대!”

“역시, 이 길이 맞았어.”


유제이는 그 메시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공익재단의 이사장이자, 국제 자원봉사자가 되어

희망과 회복을 말하는 사람.


그들은, 서로의 가능성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사무실 문을 닫았다.

밤하늘은 조용했고, 도심의 불빛 사이로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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