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지 않아도 괜찮아, 알맞게 익어가는 중이니까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20대의 나는 매해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20살의 나와 21살의 나는 키가 크듯 분명히 달라져 있어야 했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성장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위로 자라기보다, 안으로 조금씩 '익어가는' 느낌이 든다.
작년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내년에 올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더라도, 어떠한 일에도 쉬이 끓어 넘치거나 증발해버리지 않고
'보통의 나'를 이어가는 단단함이 생긴 기분이다.
지금의 나를 비유하자면, 그래, '숙우(熟盂)'와 같지 않을까.
차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께 들었던 숙우의 뜻이 내내 뇌리에 남았다.
"숙우는 물이 익어가는 그릇입니다."
물을 식히는 그릇이 아니라, 익히는 그릇이라니.
차를 우릴 때 펄펄 끓는 100도의 물을 찻잎에 바로 부으면, 여린 잎은 화상을 입고 차는 쓴맛을 뱉어낸다.
너무 뜨거운 차는 마시는 사람의 혀를 데게 하고, 차 본연의 향을 느낄 여유조차 없어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숙우다.
끓어오른 물을 잠시 이 그릇에 담아 한 김 식히고,
숨을 고르게 한 뒤에야 비로소 다관(찻주전자)으로 옮겨 담는다.
그 짧은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차는 가장 맛있는 온도가 된다.
차를 맛있게, 그리고 인생을 편안하게 만드는 법은 의외로 닮았다.
먼저 찻잎을 다관에 넣고 물을 끓인다.
그 뜨거운 물을 바로 붓는 대신, 숙우에 따라 잠시 둔다.
거칠게 끓어오르던 기포가 잠잠해지고, 날카롭던 열기가 부드럽게 순화될 때까지 기다린다.
물이 알맞게 익으면 천천히 찻잎 위로 붓는다.
그리고 잠시 후, 찻잔에 나누어 따뜻한 차를 마신다.
한때는 인생도 100도의 온도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무엇하나 또렷하지 않으면 답이 아니고, 미지근한 것은 열정이 없는 것이라 치부했다.
O와 X만 존재하는 세상, 1등만이 의미 있는 세상에서 나는 늘 내가 너무 미지근한 사람이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뜨뜻미지근한 나를 마주할 때면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이 바뀌었다. 가장 맛있는 차는 100도의 물이 아니라,
한 김 식혀져 부드러워진 7-80도의 물에서 나온다.
어쩌면 나는 지금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알맞은 온도로 익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O도 아니고 X도 아닌, 뾰족하지만 어딘가 둥글어진 '세모'로 살아가는 것.
너무 뜨거워 남을 다치게 하지도, 너무 차가워 나를 얼어붙게 하지도 않는 그 적당한 온기의 삶이.
숙우 속의 물처럼 잔잔하게 익어가는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