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여름(12)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중학교 수학 수업 - 여름 (12)

by Galaxy샘

여러분이 아는 수학자들 중 첫 번째로 손에 꼽는 수학자는 누구인가요?


샘이 소개하고 싶은 수학자는,

갈릴레이는 그를 ‘초인(超人)’이라 부르며,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말했으며,

뉴튼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수학자로 여긴다.'라고 얘기했으며,

라이프니츠는 '이 수학자에 비하면 다른 수학자들은 평범하게 보이게 만드는 천재 그 자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수학자는, 수학계의 최고상인 '필즈상' 메달에 그의 얼굴이 새겨진 수학자,

바로 '아르키메데스(Αρχιμήδης, B.C.287~B.C.212)' 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그 곳에는 '아르키메데스 광장'이 있고, '아르키메데스 동상'과 '아르키메데스 박물관'도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무역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시라쿠사에서

그는 수학자뿐 아니라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천문학자이자 철학자였던, 그야말로 '천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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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는 몰라도, ‘유레카(Eureka)!’는 알고 있지요.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서 '유레카' 라고 외친 사람이 아르키메데스였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단순히 이론가를 넘어서

실용적 도구, 기계, 무기를 제작한 고대 최고의 발명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발명한 물건들이 얼마나 신박했는지 살펴볼까요.

특히 당시에는 전쟁이 잦아서 아르키메데스는 무기도 많이 발명했지요.


1. 원통 안에 나선형 모양의 축을 넣어서 이를 회전시켜 물을 올리는 도구. 오늘날에도 농업용 관개시설이나 폐수처리장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여러 개의 도르래를 조합한 복합 도르래 장치도 발명했고요.

3. 지렛대의 원리를 잘 알아서,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와 받침점을 주면 나는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여 발사각을 조절하면서 적에게 큰 바위를 던질 수 있는 대형 투석기도 발명했다고 합니다.

4. '아르키메데스의 거울'이라 불리는 태양열 무기도 발명했는데, 시라쿠사에 침범한 로마 함선을 불태우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청동 거울 여러 개로 햇빛을 한 점에 집중시켜 불을 붙이는 무기였습니다.

5. 로마 함선이 성벽에 근처에 접근하였을 때, 배를 들어 올려 침몰시키는 철갈고리도 발명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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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대 역사학자인 플루타르코스(46~120)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일화들을 소개하면서,

'그의 기계들도 경이롭지만, 그는 기계 만든 자로 기억되기보다는 수학자로 기억되기를 원했다'고 말합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수학 이론을 발견할 때마다 파피루스에 기록하고서는

부지런히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동료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아르키메데스 친필 원고는 아쉽게도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2천2백여 년 전에 살았던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이론이 어떻게 알려졌을까요?

9~10세기경 비잔틴 제국의 학자들이

당대에도 이미 천년이 넘은 아르키메데스의 소멸 직전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을

양피지에 옮겨 적으면서 코덱스(Codex; 일종의 책)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양피지 필사본을 '아르키메데스의 코덱스 A, B, C'라고 부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이론의 전파는 바로 이 세 개의 코덱스에 기반합니다.


'코덱스 A'에는 <구와 원기둥에 대하여>, <원주의 측정>,

회전체의 부피 계산이 실려있는 <코노이드와 스페로이드에 대하여>, <나선에 대하여>,

<포물선의 구적법>과 큰 수의 표기법이 실려 있는 <모래알을 세는 사람> 등등이 실려있습니다.


'코덱스 B'에는 상세한 그림들도 포함되어 있는 <평면의 균형에 대하여>, <부체에 대하여>,

역학적 방법을 동원한 증명이 포함되어 있는 <포물선의 구적법> 등등이 실려있습니다.


'코덱스 C'는 세상에서 잃어버렸던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1544년 유럽의 바젤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저서가 최초로 인쇄본으로 발행됩니다.

이 인쇄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야코부스 크레모넨시스의 '라틴어 번역본'이 있었고,

아울러 15세기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기도 했던 요하네스 뮐러(1436~1476)가

'라틴어 번역본'을 수학자의 눈으로 오역을 찾아내어 수정하면서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558년 페데리코 코만디노(1509~1575)가 방대한 주석을 덧붙인

'아르키메데스의 선집'을 내 놓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수학자들이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이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학자들이 아르키메데스에 왜 그렇게 열광하느냐고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스스로를 '아르키메데스의 제자'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이론은 당대 수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구하고, 구와 원기둥 사이의 관계를 찾아낸 것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적분의 핵심 아이디어인 '구적법' 을 이미 천년 전에 생각해 냈으니까요.

특히 아르키메데스는 당대 수학자들에게는,

단순히 직관에 의존하지 말고, 귀류법 등을 동원해서라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해 내는,

엄밀한 수학적 태도를 수학자의 표준으로 삼게 한 최초의 위대한 수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코덱스 C'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코덱스는 당시에 양피지로 만들었는데, 양피지가 워낙 귀했기 때문에,

양피지의 글자들을 지우고 그 위에 새 글자를 쓰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렇게 지우고 다시 쓰인 양피지를 '팔림세스트(Palimpsest)'라고 부릅니다.


덴마크 고전학자인 요한 루드비히 하이베르(1854~1928)는,

1906년 터키 이스탄불의 한 수도원에서 오래된 팔림세스트 기도서를 살펴보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그 기도서 밑에 지워졌지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리스어로 된 수학 문장들을 발견했거든요.

하이베르는 1906년과 1908년 두 차례 이스탄불을 방문하여 174장에 달하는 팔림세스트를 분석하면서,

그 중 120장이 아르키메데스의 '코덱스 C'의 낱장들임을 알아냈습니다.


'코덱스 C'가 특히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만 유일하게 실려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방법> 때문입니다.

<방법(The Method of Mechanical Theorems)>은, 아르키메데스 사후 1천 7백년 뒤에 나타날

적분의 개념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문헌이기도 합니다.


이 팔림세트스는 터키 이스탄불의 수도원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만 제1차 세계대전과 그리스-터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유출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1998년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중세 기도서'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문서 수집가인 익명의 미국 부호는 이 낡은 팔림세스트를 약 200만 달러(한화 28억 원)에 낙찰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미국의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에 기탁하였고,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의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도 거금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팔림세스트 아래 숨어 있던 아르키메데스의 원문이 점점 더 많이 되살려졌고,

드디어 '코덱스 C'의 <방법>이 완전히 복원되었으며,

<스키마티온>도 복원되었습니다.

과연 이 익명의 낙찰자는 누구일까요?


현재 이 팔림세스트는 디지털화되어 온라인으로도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 되었습니다.

덧붙여 아르키메데스의 <스토마키온>은,

단순히 아이들의 놀이용 퍼즐을 다룬 가벼운 글이라고 치부되었습니다만,

완전히 복원되자,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조합론(Combinatorics)' 논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그야말로 아르키메데스는 2천 년을 앞선 '천재'였다고 하겠습니다.


기원전 212년,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함락할 때 였습니다.

로마 병사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어떤 노인이 모래 위에서 뭘 그리고 있는데,

로마 병사가 일어나라고 명령을 했더니, 그 노인이 "내 도형을 망치지 마라!" 고 소리치자,

화나 난 로마 병사가 그만 그 노인을 죽여버렸습니다.

당시 로마 장군 마르켈루스는, 아르키메데스만은 반드시 살리라고 엄중히 명했습니다만,

그 로마 병사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바로 아르키메데스임을 몰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뚜렷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언어는 소멸하지만 수학적 아이디어는 불멸하기 때문이다.'

- <어느 수학자의 변명>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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