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후기가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벌써 30년 가까이 절친으로 지내고 있는 김박사가 추천해서 읽기 시작했다.
김박사와는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독서에 대해서도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인데,
주로 김박사는 고전을 읽고, 나는 고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서로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오랜만의 지인 추천이라 책을 빌리려고 했더니 상당히 인기 작품인지 거의 다 '대출 중'이었다.
서초구 책나르샤 서비스를 통하여 겨우 빌리긴 했는데, 엄청난 두께에 무게도 무겁다.
(책의 경우 두께와 무게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종이의 무게와 두께가 달라 한 가지 수치만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무려 680페이지에 달한다.
책 소개를 보니 작가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근래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라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안 읽었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아주 긴 소설을 선호하지 않는다. 책이 무겁기도 하고 ?)
책 뒤표지에 있는 설명을 잠깐 읽어보니 '준연과 해원은 각별한 친구가 되었지만 하진의 등장으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제목이 '광인'이구나. 도대체 셋 중에서 누가 미쳐가는 것일까? 혹은 셋 다 미쳐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의 중반부쯤 읽었을 때,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미쳐가는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 갈등은 쉽게 해결되었다. (물론 쌓이고 있기는 했겠으나,)
주인공 세 남녀인 준연, 하진, 해원의 우정, 질투와 욕망을 위스키과 음악, 그리고 돈으로 그려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소설이다.
중반부 이후부터는 해원이 본격적으로 미쳐가기 시작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가지 않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광인'이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약간 우울하게 결론이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을 더 선호한다.
'7년의 밤'으로 유명한 정유정 작가가 떠올랐다. 그의 소설 여러 권을 읽었는데, 그에게서 매번 느껴지는 우울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김박사와 내가 유일하게 겹치는 분야가 추리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미친 듯이 읽었고, 국내 작가로는 도진기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한 동안 추리소설에 몰두해서 살았는데 장르의 특성상 마지막에 사건이 해결되는 기쁨의 순간이 있다.
물론 항상 해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해결된다는 속 시원함이 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오히려 우울하게 끝나는 이 소설의 여운이 더 오래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인공 해원이라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지점이 어디일까 생각해 봤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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