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후기가 아니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특이한 제목의 이 책을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우연히 봤다.
평소라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얼마 전 알게 된 분이 샤프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계셔서 추천해 드릴 겸 읽게 되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928247
저자인 신정섭 씨는 한양대, KAIST, 포항공대에서 기계공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공조냉동기계 기사/기술사, 전기기능장 자격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그것만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이 책에 있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마디로 열심히 산다는 점에서 존경심을 먼저 가지게 되었다.
(무엇인가에 미쳐 열심히 살았던 적이 몇 년 전이었을까?)
이 책을 쓰기 위해서만 2,000시간을 투자했다고 마지막 장에 밝혔다. 그중 1,000시간은 책에 들어갈 그림을 직접 그리기 위해서 화실을 다녔다고 한다.
'Special Thanks To' 첫 번째에 화실 원장님이 언급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개인적으로 샤프에 크게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다만, 몇 년 전에 '문구의 모험'이라는 책을 통하여 의외로 문구의 세계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겠구나 했던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때 돌리면 연필 심이 나오는 샤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누구나 신기해하던 그 제품에 CROSS라는 브랜드 명이 적혀 있었던 것까지만, 기억했는데
이 책을 통하여 그 방식이 Twist Knock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A. T. Cross Company라는 브랜드는 다루지 않고 있는데, 구글링을 해 보니 1846년에 설립된 미국의 필기구 제조 회사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라고 한다.
책에서 알게 된 것 중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미쓰비시 유니'의 '쿠루토가' 엔진이다. 샤프심이 한쪽으로만 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글씨를 쓰다 보면 샤프심이 자동으로 회전한다.
국내 쇼핑몰에서 무려 5,000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이런 샤프를 본 적이 있나 찾아보니 2008년에 출시되었다. 그동안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학창 시절 때 이런 샤프를 썼더라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고3 때 1년간 미친 듯이 공부를 했는데, 그때는 '모나미 153' 볼펜만 사용했다.
목표는 하루에 한 자루!!!
이것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모나미 볼펜으로만 가능하다.
조금 쓰다 보면 볼펜똥이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그리고 글을 쓰지 않고 생각을 할 때는 습관적으로 볼펜을 종이에 대고 돌린다. (똥을 자연스럽게 낭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영어 같은 과목을 공부해서는 쉽지 않다. 미친 듯이 수식을 써 내려가는 수학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아마 수학 성적이 좋았었나 보다.
(이 책에도 모나미 153 볼펜이 잠깐 언급되는데 원형이 OHTO사의 326 볼펜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샤프는 아니지만 볼펜 하나가 내 인생에 꽤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학창 시절 생각을 하다 보니 대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전공은 화학공학이지만 다른 과 수업을 꽤 많이 들었었다.
학점보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앞섰던 것 같다.
기계과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우리 과 전공 중에 '기초기구학'이라는 기계과스러운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이 맞다면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기계과 교수로 재직 중이시던 분이 우리 학교로 옮기셔서 첫 학기에 그 과목을 개설하셨다.
한국에 처음 오신 교수님과 폐강 위기를 간신히 넘긴 적은 수강생들과 함께 꽤 자유분방한 수업을 했던 기억이 있고, 내용에도 흥미를 느껴 꽤 좋은 점수를 받았었다.
그때 아주 살짝 기계공학도 흥미가 있구나 싶었는데, 이 책으로 인하여 거의 25년 전의 그 기억이 떠올렸다.
(샤프 펜슬 하나로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저자는 본인을 '공학 덕후'라고 표현했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지극히 신비로운 이 녀석을 미치도록 알고 싶다'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을 통틀어서 이렇게 미친 사람은 처음이다.
샤프를 무게로 재 본 사람이 있을까?
저자는 샤프를 14.8kg(약 1,100자루) 가지고 있다고 한다.
써 보고, 분해하고, 개조하고 심지어 비교를 위하여 측정도구를 제작하기도 한다.
샤프에 미치지 않았어도, 기계에 미치지 않았어도 공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ps. 쿠루토가 샤프와 델가드, 그리고 저자가 추천한 몇 개의 샤프를 주문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