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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Jun 16. 2021

[리뷰] 드라마 : 그녀의 이름은 난노

악마를 심판하는 아이

*스포 주의

*1화 내용의 간접 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하면 용서를 빌지만

또 같은 짓을 저지르고 똑같이 사과한다

넷플릭스는 묘하게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블랙 미러' 때부터 사람들의 기분 나쁨을 최대한으로 건드리는 방식은 마치 상처를 벌려 소금을 문지르는 것과 같다. 특히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이런 형식을 취하는 건 독특하다. 과거 본인이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무작위로 각층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탓에 최대한 다수에게 불쾌함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애썼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제 원하는 사람들이 결제해서 보는 마당에 굳이 전 연령층의 입맛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졌다. 대신 타깃층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드라마 중 하나가 '새로운 아이' '난노'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도 이게 잘못됐다는 건

아시죠?




난노는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세상에 꺼내서 철저히 난도질당하도록 판을 만드는 학생이다. 묘한 분위기를 뿜으며 매번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오는 난노는 반 학생들에게 아무런 움직임 없는 눈동자로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타나는 학교의 문제점들에 도전한다. 1화에서는 감히 콘돔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가 나온다. 학교 선생들은 불교 영상으로 하는 명상이 최선의 성교육이라며 진행하고 나라에서도 훌륭하다며 인정해 준다. 그러나 정작 교사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못 받은 결과로 잘못된 성 인식을 가지고 성폭행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성교육이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반증하는 꼴이다.


난노는 현실에서 꽤나 많이 들어봤을 법한 이 서사에 뛰어든 새로운 캐릭터다.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자진해서 최악의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서서는 이 최악의 상황을 만든 대상들의 멱살을 잡는다. 그들이 자초한 지옥의 한가운데에 끌어다 놓으며 웃는다. 흔히 말하는 참교육의 매운맛 버전이다. 단, 매운 정도가 불에 타는듯한 매운맛이라서 개인에 따라 거북함이 들 수 있을 정도다. 사회의 문제를 일으킨 해충 박멸에 일말의 자비도 없이 각종 역한 방식을 동원하는 모습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난노를 보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실제 사회에서는 법이 사회의 규칙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악용을 막기 위해, 과용을 막기 위해 신중히 휘둘러야 하는 무기다. 게다가 범법자들의 인권이나 교화를 고려해서 피해자의 심리적인 고통을 온전히 반영한 처벌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누군가 내 가족을 유린하고 살해했다면 내가 범인을 잡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는 생각은 이해될 만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범인을 찢어 죽이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분명히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악용해서 무죄와 다를 바 없는 처벌에 그치거나, 완전히 무죄 판결을 받거나,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강압 수사의 그림자를 지우고자 조명을 다른 방향으로 과하게 돌리다 보니 다른 곳에 짙은 그림자가 생겨 벼렸다. 하나의 범인을 잡는 과정에 억울해질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범죄자의 교화 역시 재범을 막기 위해 중요하다는 점은 간과하자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유로 베푼 자비를 나약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부분이다. 사회의 다음 단계로 도약을 위한 임무 하나가 여기 있다.




아무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https://www.netflix.com/kr/title/80241947

https://youtu.be/WYAMLoLOVYI

악마를 심판하는 더 악랄한 악마. 똑같은 수준의 범죄자가 되면 안 된다는 이성 너머에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저 악마를 지옥으로 데려가라는 숨겨진 바람을 난노는 실현시킨다. 자신의 악함을 모르는 악마들의 뻔뻔한 철판을 뜯어내기 위해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난노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다. 잔혹함을 악함의 기준으로 둔다면 가히 가장 악한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난노로 인해 비상식적인 나의 억울함이 상식적인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난노가 가해자보다 더한 악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언제 올까. 이토록 기분 나쁘게 잔인하고 자극적인 드라마를 선호하게 만든 사회의 책임. 영화를 보면서 난노가 존재하는 사회보다 난노를 통해 답답함을 해소하게 된 현실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일. 난노는 세상의 구원자일까, 탈출구일까. 그것도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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