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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Jun 02. 2021

[리뷰] 영화 : JOKER

악당은 당신이 만든다

*스포 주의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주의가 필요한 스포가 있습니다)


머레이 작은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대에서 저를 조커라고 소개해줄래요?

지금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했던 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영화 조커를 보면서 이 서사를 시작부터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를 아직 보지 않았다. 엄청난 연기 몰입력에 의해 끝내 현실에서도 조커의 우울 속에 생을 마감해 버린(2021.11.30 수정) 사람이라는 사실만을 먼저 알았다. 그의 엄청난 연기는 존경받을 만 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 엄청난 몰입력은 일부 사람들이 지금의 조커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아버렸다. 다행히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를 먼저 봄으로써 그 부정에 빠지지 않고 시작점에 서 있는 조커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무례하죠!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겠지




한바탕 우리나라 영화인들의 커다란 이야깃거리가 됐던 기생충.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가히 2019년 조커가 냄새나는 가족의 불편함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영화를 보는 단 한순간도 웃지 못했다. 조커의 농담은 웃기지 않았고, 한 줌의 행복도 불쌍한 광대에게 허락된 적이 없다. 오늘날의 뚜렷한 계급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아서'에게 누구도 호의적인 시늉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아서가 자신의 삶을 밝게 만들려 애쓸 때마다 웃음은 비극을 부르는 종소리가 되어 더 깊은 지옥의 문을 열었다.


영화 전체가 너무나도 폭력적이어서 15세 관람가라는 게 놀라울 정도라는 평을 봤다. 작은 움직임과 모든 장면이 지독히도 잔인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다만, 이것이 15세 관람가보다 19세 관람가가 적절하다는 평가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삶의 지옥은 곳곳에 도사리는 일상이다. 그 일상이 잔인하기에 청소년들이 보면 안 된다니. 아이들의 삶에는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다는 것인지 슬펐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후 가장 아쉬웠던 점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돈 없는 사람들의 인생이 얼마나 처절할 수 있는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그다음은? 부자건 아니건 같은 인간으로 죽음 앞에 동등하다는 생각? 그다음은?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히 잘 굴러간다.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일이지만 굳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살인사건은 지나가는 하나의 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도 않았다. 덕분에 기생충 가족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참 사회에 잘 복종 되어 살아가는 가족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조커는 빈곤의 불편함을 보여준 책임으로 지금과 같은 차별적 사회가 계속된다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의 빨간불을 보여줬다. 부유층에게 지옥 같고 치졸한 삶이란 한낱 가십거리나 머나먼 상상 같은 것이다. 그리고 부유층의 행복을 위해선 빈곤층의 피와 눈물이 필요하다. 행복은 남의 불행을 좀먹으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나보다 다른 누군가가 더 행복하다는 이유로 나는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다. 그리고는 마치 부유층은 자신이 그들의 위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군다. 도덕적 양심을 버리고 얻은 돈과 명예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말이다. 가벼운 주머니는 치졸해지는 이유가 되고 치졸은 무시당해도 되는 명패가 된다. 이렇게나 부패한 사회의 추한 모습을 이제는 모두가 인정할 때가 됐다. 추함을 부끄러워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태동을 시작할 용기를 가질 때가 됐다.




엄마는 제가 정상이 아니라고 했죠. 아니에요.

엄마 이게 나였어요.

당신은 날 이해하지 못할 거야




누군가 영화의 내용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정말 담고 있는 내용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아서가 조커가 되는 과정의 세세한 과정을 봐야 할 필요 때문이다. 학대를 받던 어린아이 아서가 엄마를 위해서 웃기 시작하고, 웃기 시작하면서 웃는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서 사회에서 정신병자로 낙인을 받고, 낙인을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호의대신 질타를 받게 되고, 호의 대신 질타를 받으며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살인을 저지르면서 유일한 탈출구를 찾게 되고, 유일한 탈출구를 찾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마침내 조커가 된다. 사실은 이렇게 나열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영화 속에서 아서의 삶은 다양한 이유로 조커의 삶에 이르게 된다. happy는 신기루일 뿐인 조커에게 자신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불타는 것은 유머일 수 밖에 없다.




① Th. 홉스는 웃음이란 돌연히 나타나는 승리의 감정이라고 하였고, A. 베인은 타인의 권위와 체면이 상실되었을 때에 느끼는 쾌감이라고 하였다.

② I. 칸트나 Th. 립스는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기대하고 긴장해 있을 때에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서 갑자기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③ A. 쇼펜하우어는 어떤 관념과 관념이 불균형일 때 나타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신사가 바나나를 밟고 넘어진다거나, 어린이가 어른 바지를 입었을 때 등이다.

④ M. 베르트하이머는 만화를 보고 웃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닮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근사하게 닮았을 때의 감정이라고 하였다.

⑤ H. 베르그송은 자유로워야 할 인간이 부자유한 기계와 같은 운동을 하였을 때, 즉 정신이 물질화하였을 때 웃음이 나온다고 하였다.

⑥ W.멕도갈은 애교 있는 웃음은 상대에 대한 호의의 표시이며, 조소는 상대에 대한 가벼운 비판이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자스틴은 놀람과 기대의 어긋남, 우수(優秀)와 실패, 부조화와 대조, 사교적 미소, 긴장의 해방, 유희의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웃음 [laughter] (두산백과)




아서에게 타인들의 불행은 처음 발견한 승리의 감정, 예상 밖의 결과, 관념의 불균형, 닮음에 대한 공감, 정신의 물질화, 상대에게의 호의, 가벼운 비판, 긴장의 해방, 유희인 것이다. 누군가는 정신병이라고 단정했지만 조커는 자신이 한 번도 미쳤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단지 누구도 겪지 못한 상황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도록 말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잔인한 말은 '만약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얼마나 말도 안 되고 거지 같은 일도 누군가에겐 평생의 경험을 통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타인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누구도 온전한 정답의 삶을 살지 않고 누군가에게 지적질 할 만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신도 일반화라는 폭력으로 지금도 주변 사람을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나의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

나는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였어




악당은 철저하게 만들어진다. 태어나는 게 아니다. 거의 태어나는 순간부터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악당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결과에 다다라서 악당을 죽이는 일은 오랫동안 해왔다. 악당의 시작을 잡아내는 건 아직도 이상에만 있어야 할까. 혓바닥까지 흰 가면을 쓴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웃음 짓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길 간절하게 바라본다.




https://youtu.be/x60mB0zXZ38




기타 영화에 관해

: 정신병을 탐내는 사회


영화 'HER'에 나왔던 주인공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화를 다 본 후였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이는 46세의 나이에 오직 영화만을 위해 30kg 이상을 감량한 탓일 것이다. 특히 캐릭터의 특성상 건강하게 마른 몸이 아니라 정말로 영양실조에 걸려 아파 보이는 몸을 만들려고 오직 사과 한 개 만을 먹으며 생활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덕분에 주름과 갈비뼈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였던 그의 모습은 어떤 장면에서도 멋있어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진정으로 아서와 조커를 연기하려고만 했다. 한 가지 더 놀라웠던 건, HER에서 너무나도 선명한 발음으로 영화를 완벽하게 이끌어간 배우가 이번 영화를 위해 발음까지 어눌하게 바꿨다는 점이다. 겉멋으로 정신병자 코스프레하는 조커가 아닌 진정으로 인생의 끝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려는 처참한 조커는 완벽한 연기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병이나 사회 부적응적인 면모를 가지면 천재라느니 머리가 좋다느니 이상하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가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병까지도 노력과 돈으로 사려는 시대가 왔나 보다. 명품 브랜드에서 가난을 컬렉션으로 만든 것처럼. 영화가 나온 후에는 '조커 병'이 돌기 시작했다던데 부디 자신이 이 처절한 발악에서 멋있음을 느끼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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