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의 살인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민우 생일축하합니다!
벌써 10년 전에 나온 작품 영화 '하모니'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어떻게 보게 됐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제목을 들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았나 보다. '수용자'라는 무거운 주제였음에도 초등학생마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달력이 한몫했다고 보인다. 너무 심각하지도 않게, 너무 가볍지만도 않게, 그 와중에 수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충분히 표현됐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53034&mid=12173
짧은 예고편만 보더라도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도 생생할 정도다. 하지만 역시나 10년 전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단순한 감동 말고는 영화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 생각한 적이 없었다. '흔한 인생 감동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2019년 최근 어느 날, 평소처럼 유튜브를 타고 가다 하모니에 대한 영상을 봤다. 동시에 느꼈다. 그 작품이 명작인 이유를 나는 아직 몰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김윤진, 나문희, 강예원, 이다희, 장영남, 박준면, 정수영. 지금도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의 이름도 몰랐다. 그들이 연기한 인물들의 인생이 어떻게 그런 벼랑 끝으로 몰렸는데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바람피운 남편을 살해한 사형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을 살해한 임산부, 자신을 성폭행한 새아버지를 죽이고 자해를 일삼는 딸, 죄인의 인간적 면모에서 갈등하는 초보 교도관과 냉혈함을 유지하려는 교도관, 진정한 사랑을 꿈꾸던 프로레슬러, 아이와 남편을 지키기 위해 사채업자를 살인한 밤무대 가수. 짧은 글자 몇 개로 쓰이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잔인한 그들의 삶.
우리나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명확하게 눈에 드러나는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인이라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지양하는 행위로 두고 있다. TV 프로에 나온 한 범죄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지속적인 가정폭력 가해자의 폭행은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라고 판단되지만 '이에 반항하며 달려드는 피해자는 가해자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해할 의도를 가졌다'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더 심한 처벌이 내려진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 살인.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반인륜적인 행위다.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직 살인만이 최악의 범죄 행위인가. 우리나라 말 중에는 '피 말려 죽인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는 죽일 의도는 없다. 대신 죽을 만큼 괴롭지만 죽지 못하게 할 의도가 있다. 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쉽게 죽으면 안 되지 끝까지 살아서 평생 괴로워해'라는 대사를 쓰기도 한다. 죽을 만큼 괴로운 순간순간을 보내게 하는 것. 과연 이런 행동이 살인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될까.
피부에 와닿는 지옥에서 구원받을 방법이 아무것도 없을 때 살인은 저지른 사람.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삶에 숨구멍을 뚫어주지 못한 우리는 책임을 회피해도 될까. 방관은 분명히 또 다른 이름의 살인이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보낸 무관심은 분명 나에게 돌아온다.
They had it comin’ They had it comin’
그들이 자초한 거야
They had it comin’ all along
모두 그들이 자초한 거야
’Cause if they used us
그들이 우리를 이용했다면
And they abused us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학대했다면
How could you tell us That we were wrong?
어떻게 그게 우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어?
-뮤지컬 시카고 'cell block tango' 중-
이제 더는 같은 이유로 발생하는 살인을 막아야 한다.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은 늘 어렵다. 수많은 사람의 의견이 부딪히고 누군가의 상처가 벌어지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반드시 만들어질 필요가 있기에 더는 미뤄두면 안 된다. 몇몇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당신도 누군가에게 기댈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하모니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민우야.. 아니 훈아.. 아줌마 한번만 꼭 안아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