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가 되고 싶었던
말이 내 마음처럼 안 나와
말이 똥처럼 나와
숙제 다 했어. 오늘 00이랑 놀게. 나 잘 지내. 오늘 제가 일이 있어서. 저는 잘 못 해서. 장례식이 있어서. 제가 바빠서. 아이 알죠. 우와 몰랐어요. 진짜 슬프네요. 너무 안타까워요. 제가 책임질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러겠어요. 말이 됩니까. 그건 소설입니다.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허용범위 속 거짓말은 어디까지인가.
국민들이 똑똑해지면 저 같은 사람은
아주 골 아파지기 마련이니까요
영화 소재는 신선하고 좋았다. 불필요한 마찰이나 감정소비를 피하려는 거짓말을 넘어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을 기만하는 거짓말은 사기다. 하지만 그 경계의 모호함 때문에 때로는 선을 넘은 거짓말도 다른 거짓말처럼 넘어가 진다. 그리고 정치판은 사람들에게 사람 간의 머리싸움이 중계되는 덕에 이기기 위한 거짓말이 난무한다. 한때는 영화 속 시나리오라고 믿었던 거짓말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지만 시원하게 긁어준 무엇이 지금까지 없다. 다들 눈치를 조금씩 보면서 건드려보지만 시원하게 터뜨리는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코미디 영화에서 대놓고 소재로 쓰겠다고 하니 관객 입장에서는 기대할 만했다. 예고편까지는 그 기대감에 잘 부응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이다가 되고 싶었던 영화는 결국 흔한 시도들처럼 '그런 부분들'을 살짝 건드리고 말아 버렸다. 코미디로 푼다는 명목이었을지 모르지만, 괜찮은 사건들은 터진 건가 싶더니 벌써 끝이 났다. 아는 사람에게는 답답했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되기도 어려운 전개를 보여줬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본인이 진실만을 말하는 사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솔직한 입은 본인 가족과 친한 사람들에게 날아다닐 뿐 3자에게는 멈칫거린다. 입이 풀리는가 싶으면 사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놓거나 분량을 짧게 만들어서 괜한 정치적 오해를 피하려고 한다. 우리의 속을 긁어주겠다고 홍보를 하고, 국민의 사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쌓아온 기대를 회피해버렸다. 심지어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 넣어 놓은 설정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감동도 주지 못했다. 예고편을 뛰어넘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의 안타까운 단면이다. 예술의 가치는 한없이 높아질 수 있지만 반대로 한없이 낮아질 수도 있다. 문제는 예술의 가치를 평가받으려면 홍보가 필요하고 홍보는 돈의 싸움이다. 유튜브가 광고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다시 돌아와서 영화는 특히나 돈이 많이 필요한 예술이다. 애초에 돈이 많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의 돈을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후자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돈을 많이 끌만해야 함과 더불어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계획서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워너 브라더스의 갑작스러운 변심으로 생명력을 잃은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하나의 예시다.
노력과 정직은 배신하지 않을까?
배우들도 탄탄했고, 소재도 신선했고, 장르도 적절했다. 너무 잘 준비된 모든 재료가 안타깝게도 현실에 타협하면서 스스로 과도한 한계선을 그어버렸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쌓여만 간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주인공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심은 어디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