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빵 Jun 10. 2021

[리뷰] 영화 : 동주

부끄러울 줄 알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순수한 어린아이는 아직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배운 어린이는 정직하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청소년은 부끄러워야 하는 이유에 의문을 가진다. 청년은 부끄러움을 느낄 대상을 선택한다. 장년은 부끄러움에 무뎌지기 시작한다. 노인은 생애를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회상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가 부끄러움을 대하는 태도는 변해가지만 살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을 마주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부끄러움은 참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인지 모른다. 부끄러울 줄 알아도 돈을 더 벌지도 못하는데 굳이 우리는 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 아담과 이브는 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우리를 이 혼란스러운 감정에 따르게 했는가. 우리가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부르짖는 수많은 밤은 너무나 아프다. 신이 우리를 하나씩 돌아볼 수 없으므로 스스로 반성하는 법을 가르친 덕일까.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함에 자신을 꾸짖는 감정은 도덕적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감정이지만, 안타깝게도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실된 감정이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인간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데에 스스럼이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마냥 될 대로 되라는 태도에 치여 죽는 건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 이게 무슨 기이한 일인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기이한 불평등에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자진해서 부끄러움을 버린다. 혹은 살기 위해서 꾸역꾸역 부끄러움을 억누른다. 평등. 평등이란 무엇인가. 출발점이 같으면 평등인가. 도착점이 같으면 평등인가. 같은 기회를 주면 평등인가. 평등하여 얻는 것은 무엇인가. 자격지심이 사라지나. 박탈감이 사라지나. 가난이 사라지나. 욕심이 사라지나. 이기심이 사라지나. 그것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너무나 커다란 고민거리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평등 속에 있는 부당함을 용납할 수 없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마는 마음 한켠의 저릿함은 분명 모호한 실들을 풀어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파란 물감과 빨간 물감이 닿으면 그 가운데는 보라색이 된다. 그 보라색에서 빨간색 입자와 파란색 입자를 구별해내는 일, 혹은 그들을 구별할 방법을 찾는 일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다. 양심은 그렇게 모호한 문제들에 얽힌 심오한 감정이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동주는 글을 쓴다. 자신의 친구와 가족이 죽어가고 자신의 나라가 부서지는 와중에도 공부하고 글을 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서 나서는 일 없이 조용히 홀로 방에서 글을 쓴다. 하지만 동주는 한평생 가슴속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단지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정당화할 수 없겠지만, 진심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글에 담긴 부끄러운 생각들 때문에 감옥에 갇힌다. 일본 형사에게 억지로 자신의 요상한 죄목을 인정하는 서명을 하라는 요구를 받고서도 부끄러워서 서명하지 않는다. 동주는 부끄러워했기에 죽는다. 행동하지 못했기에 부끄러워하였더니 부끄러워 행동하며 죽는다. 부끄러움이란 이토록 뿌리 깊은 감정이다.




https://tv.naver.com/v/693087

부끄러움은 어떨 때 오는가. 부끄러움은 왜 오는가. 부끄러움은 필요한가. 부끄러움에 관한 질문은 끝없이 오는데 답은 단 하나 쉽게 나오지 않는다. 부끄러움에 대한 귀찮은 고민 따위는 고이 접어두고 인생을 사는 게 편하려나. 그러다가도 부끄럼 없이 떼를 쓰는 사람과 부끄럼 없이 고집을 피우는 사람과 부끄럼 없이 남을 죽여가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든다. 무엇이든 과하거나 부족하면 안 되듯 부끄러움도 적당해야 하나, 귀찮음을 부끄러움이라 포장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부끄러울 줄 모르는 건 정말 큰 상실이다. 나는 부끄러울 줄 아는가. 나는 부끄러울 자격이 있는가. 감히 부끄러움이란 이름을 붙여도 되나. 나는 부끄러움을 고민하는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작가의 이전글 [리뷰] 영화 : 정직한 후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