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이야기
어릴 땐 내가 서른 살쯤 되면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러나 현실은 내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고등학생 때는 남들에게 내보일 만한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였다. 운 좋게 이뤘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내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뭐야. 대학만 가면 다 된다며.) 초중고딩 때 느꼈던 막막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예술대학교의 자유롭고 재능 넘치는 학우들 사이에서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혔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외로워서 연애에만 골몰했다. 결석이 잦아 제적을 면하기 위해 몇 번이고 계절학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부른 학생이었다.) 그러면서도 졸업하면 뭐라도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도피성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했다. 진짜 가고 싶어서라기보단 당시 '탈조'가 유행했기에 그 흐름을 탔던 것이다. 호주에 가서 바리스타 일을 하겠다고 국비 지원을 받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카페에 취업해 일을 하다 보니 코로나가 터졌다. 그 핑계로 워킹 홀리데이 계획을 취소하고, 프랜차이즈 카페 매니저로 몇 년간 일했다.
카페 일이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머리가 없고 손이 느려 동료들에게 신뢰받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내 잘못을 다른 사람 탓하며 험담까지 했으니 뒤에서 내 평판이 좋을 리가 없었다. 미움을 견디고 견디다가 바리스타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또 뭘 했더라.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어 심리학 공부를 했다. 그런데 웬걸, 심리학의 본질은 과학이었다. 교재에 뉴런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부터 급격히 심리학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거의 처음부터)
전 세계 심리학자님들 존경합니다.
마지막으로 전공(문예창작)을 살려 출판 편집자가 되려 했지만 자소서 내는 곳마다 번번이 떨어졌다. 그간 모아둔 돈을 연애하면서 다 까먹고 허덕이는 와중에 IT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와 1년 일하고 그만두었다. 사무직은 내 체질과 맞지 않음을 여실히 느끼며.
생각해 보니 나는 무언가를 너무도 힘들게 견딜 때마다 발목을 접질려 깁스를 했었다. 바리스타 일할 때 한 번, IT 회사 다닐 때 한 번. (몸과 무의식의 밀접성은 느낄 때마다 참 신기하다.) 그 때문에 왼쪽 발목 인대가 약해져 현장에서 발목보호대를 차고 일한다.
내게 특출 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학 다닐 때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좌절을 거듭했다. 급기야는 내게 형편없는 유전자를 물려줬으면서 금수저가 아닌 부모님을 원망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다행히 그 무렵부터 심리 상담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받는 중이다. 벌써 2년이 넘었다.
여전히 막막할 땐 무릎이 꺾이듯 마음이 고꾸라진다. 그럴 땐 속절없이 운다.
한참 울고 나면 그래도 내가 나를 잘 일으켜 세워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어릴 때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마음으로. 몇 번씩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곤 했던 칠전팔기 정신으로.
죽지도 못하면서 죽음 같은 삶을 사는 건 너무도 괴로우니까.
서른이 넘어서야 나는 내 인생의 핸들을 쥔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리 상담을 통해 알았다. 이전까지의 나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삶을 틀어쥐고 어디로든 가주었으면 했다. 잘 안 되면 죽지 뭐 생각했다. 그러나 난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살아가리란 걸 알았다. 그러니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 나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가겠다는 태도가 들어섰다. 내 삶과 맞짱 뜨는 것이다.
오랜 방황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정말 잘 살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 고마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너무도 잘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으니 일찌감치 모든 걸 끝내고 싶어 했던 거다.
뭐 하나 이뤄놓은 것 없고 돈 한 푼 안 모았고 심지어 빚까지 있지만 나는 내가 헛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난 언제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도권을 잡았으니 이제 시작이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참 두려웠었다. 지금은 같은 말에 위로를 받는다. 사람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같은 저성장 시대에, 출생률 낮고 자살률 높은 이 나라에서 숨 쉬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거다. 또한 실존의 불안은 당연한 거다. 기왕 살 거 후회 없이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