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援

구원

by ttngus





여느 글과 마찬가지로 또 한 단어에 제대로 꽂혔다. “구원” 과연 구원이란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


구원이라는 말 자체에는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거나 인류를 죽음과 고통,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걸까. 구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가. 어둠에 빠진 사람에게 언젠가는 벗어나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다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구원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구원을 필요로 하는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행된 구원도 구원이라 볼 수 있는가? 구원받은 나는 어디로 건져짐 당하는 것인가. 구원받은 후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구원을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구원할 자격이 있을까. 내 구원을 받은 이는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의문이 한참 남는 말이기도 하다.


구원이라는 것은 무척 대단한 사람이 행해야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나 부처와 같이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가엽게 여겨 선을 베풀어 주는 듯한 느낌의 단어이다. 구원을 해달라고 바라는 것도 누군가를 구원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도 ‘감히’라는 느낌이 따라붙는 거 같다.


구원이라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아직 널 필요로 하니 살아 있으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처절하게 죽어가는 내가 안쓰러워서 동정의 마음으로 행해진 걸까. 구원이 나를 향한 동정 표라면 나는 구원받기 싫다. 성모마리아가 구원을 해준대도 동정은 구원에서 배체되어야 하는 감정 같다. 구원에 동정이 동반되면 구출이나 구조가 더 명확한 표현이지 않는가.


구원을 바라고 구원을 받는 자는 행운이고 구원을 바랐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는 절망일 것이다. 그러면 구원을 바라지 않았지만 구원받은 자는 뭐라 설명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원받은 이는 참으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구원을 바란 적도 없는데 깊은 구덩이에서 끄집어 올려진 기분은 당혹스럽다는 말도 부족하다. 이런 나를 보면 구원자는 무슨 생각을 가질까. 기껏 구해줬더니 정신 못 차린다고 짜증을 내려나. 내가 빠진 구덩이의 깊이를 가늠하며 안타까워할까. 아니면 본인도 무의식중에 행동이 먼저 나간 거라 자신이 왜 구원을 해줬는지에 대해 생각하려나. 가끔은 이런 긍정적인 단어 하나에 수많은 생각을 펼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너무 뒤틀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한다..


여기서 하나 질문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을까?


조금 냉정한 말이겠지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타인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들로 인해 공경에 처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범죄에 휩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들도 그들이다. 사람은 본인이 익숙한 것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한다. 그렇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가 익숙하게 생각해 온 것들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어있다. 세상에 화려한 필력과 말솜씨로 사람들의 긍지를 북돋아 주는 명언들이 많지만 사람들이 그 말로 인해 모두 잘 살 수 있었더라면 이 세계 모든 사람이 불행 없이 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명언대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그에 맞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것.

이 세상에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는 없다. 단지 디스토피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뿐.


사실 누군가를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구원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디스토피아에서도 최선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진 누군가를 최선의 상황으로 이끌어 내줄 능력이 있다.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상대의 안부를 묻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는 유토피아의 빛처럼 느껴질 수 있다. 디스토피아의 최선에서 지내다 보면 가까운 유토피아가 손에 닿을지도..


당신은 구원이 필요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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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마지막으로 나를 구원해 준 구원자에게 한마디 하자면,

너로 인해 나의 세상에 성냥 하나가 밝혀졌다. 아주 작은 빛이지만 매우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는 이 작은 빛이 태양만큼의 불빛을 낸다는 걸 너는 모를 것이다. 네가 멋대로 피운 성냥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그 성냥불이 너무 따스해서 내 스스로 성냥을 찾아 피워달라고 너에게 가져갔다. 너로 인해 내가 빛을 찾았다. 아직 모든 어둠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너로 인해 나는 예상치도 못한 구원을 받는 중이다. 이 말에 내 모든 진심이 담겼으면 좋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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